집요한 잔조각 찾기..50년 걸려 복원한 무령왕 금동신발

노형석 2021. 9. 1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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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백제 25대 임금 무령왕의 발에 신겼던 큰 금동 신발이 눈앞에 나타났다.

국립공주박물관이 백제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아 특별전으로 13일 개막 행사를 연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전 현장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처음 공개된 왕의 신발이었다.

14일부터 내년 3월6일까지 상설관과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금동 신발 등 왕릉 출토 유물 5232점 전체를 발굴 이래 최초로 모두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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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 현장
최초로 전시장에 공개된 무령왕의 금동 신발. 발굴 당시 형태가 으스러져 원형을 찾기 어려웠으나 최근 보존 복원 작업을 거쳐 왕비의 신발과 함께 처음 선보이게 됐다.

1500년 전 백제 25대 임금 무령왕의 발에 신겼던 큰 금동 신발이 눈앞에 나타났다. 고구려에 패해 망한 것이나 다름없던 왕조를 웅진(공주) 땅에서 다시 일으켜 세운 제왕이었다. 신발은 22년간 재위하며 눈부신 치적을 쌓은 왕이 죽자 슬퍼한 왕족들이 주검에 신겨 무덤에 넣어준 껴묻거리였다.

국립공주박물관이 백제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아 특별전으로 13일 개막 행사를 연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전 현장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처음 공개된 왕의 신발이었다. 측판과 바닥판을 이어 만든 금속 신발은 왕릉 발굴 당시 형태가 으스러져 원형을 찾기 어려웠으나, 박물관 연구진이 집요하게 잔편을 추적하고 이어붙이는 복원 작업 끝에, 역시 뒤꿈치가 복원된 왕비의 금동 신발과 함께 처음 선보이게 됐다. 녹슬어 어두운 빛이었지만, 육각무늬와 맞새김된 꽃무늬가 드러난 신발에는 군주의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국립공주박물관 상설관에 차려진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 들머리에 나온 동탁은잔(청동받침이 있는 은잔). 잔과 받침에 연꽃, 톱니 등의 무늬와 인면조, 용, 사슴, 새 등의 온갖 신령스러운 동물들을 새겨놓은 백제 공예미술의 명품이다. 웅진백제 시기 백제인의 사상과 미의식을 집약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14일부터 내년 3월6일까지 상설관과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금동 신발 등 왕릉 출토 유물 5232점 전체를 발굴 이래 최초로 모두 꺼내놓았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왕과 왕비가 착용한 국보급 명품들을 중심으로 출토품들을 새로이 배치했다. 들머리에는 학계에서 ‘동탁은잔’이라고 흔히 불러온 청동받침 있는 은잔만 단독으로 부각시켰다. 잔과 받침에 연꽃, 톱니 등의 무늬와 인면조, 용, 사슴, 새 등의 온갖 신령스러운 동물들을 새겨놓은 백제 공예미술의 명품이다. 실체의 기억이 모호한 웅진 도읍기 백제인의 사상과 미의식을 집약해 보여주는 결정체다. 왕과 왕비의 관꾸미개, 금귀걸이, 청동거울, 진묘수 등 주요 유물들은 몰입해 감상할 수 있게 저반사 유리 진열장에 넣어 전시한 점이 돋보였다.

무령왕릉의 대표적인 출토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무령왕의 관꾸미개 장식. 치솟아 오르는 화염 모양의 무늬가 특징이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육각형, 직사각형의 금속 마구리를 씌워 온전하게 복원한 왕의 목관을 처음으로 왕비의 목관과 나란히 선보인 점도 호평을 받았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옛 송산리고분군의 배수로를 파다 무령왕릉의 입구를 막은 벽돌을 발견했던 당시 최초 보고 문서와 조사 실측 도면, 탁본, 언론 보도 기사 등을 먼저 보게 된다. 뒤이어 핵심 유물의 실물이 발굴 이후 50년간 이뤄진 주요 연구 성과와 함께 줄줄이 나타난다.

이번 전시에는 발굴 뒤 처음으로 무령왕과 왕비의 나무 베개가 나란히 진열장에 나왔다. 무령왕릉의 대표 공예품 중 하나인 왕과 왕비의 베개는 보존상의 어려움 때문에 대개 복제품만 전시되거나 따로따로 전시되어 왔다.

삼국시대 목제 공예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작으로 회자되는 무령왕과 왕비의 목제 베개와 발받침이, 두 사람의 주검이 놓였던 자리인 시상대와 함께 나란히 진열장에 나온 것이 감상의 알짬이다. 왕과 왕비의 베개는 보존상의 어려움 탓에 복제품만 전시되거나 따로따로 전시된 터라 동시 전시는 희귀한 구경거리다. 왕과 왕비의 금동 신발에 붙은 채 발견된 직물 등을 분석해 금(錦)과 라(羅) 직물 재현품을 내놓았고, 발굴 현장에서 흩어진 채 발견됐던 꽃, 오각형, 사각형 등 갖가지 모양의 꾸미개, 못들을 처음 모아 보여준 시도도 특기할 만하다.

1971년 7월 조사단원들이 무령왕릉의 아치형 입구 연도(널길)를 가로막았던 벽돌들을 빼고 있는 모습이다. 입구 연도 구멍을 빽빽히 채웠던 벽돌들을 걷어내고 묘실 내부로 들어간 조사단은 이후 몰려든 취재진과 주민들에 겁을 먹고 하룻밤 새 유물들을 모두 쓸어담는 패착을 두게 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전시를 보고 나면 두 가지 요점을 알게 된다. 우선 왕의 관과 부장품이 왕비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세나 격조가 높다. 무령왕이 절대권력자였음을 일러주는 대목이다. 또 그의 관과 묘실 곳곳은 각종 꾸미개와 못으로 고정한 화려한 직물들로 덮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특별전에서 새 연구 성과로 은연중 강조하는 내용이다.

공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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