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월급주고 떠난 23년 맥줏집 사장.."천국에선 돈 걱정 없이 사세요"

김윤주 2021. 9. 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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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 대유행]온·오프라인 추모물결 ..직원·인근 상인 "따뜻하고 성실한 분"
코로나19에 경영난·생활고..가게에는 미납 고지서만 뒹굴어
전국호프연합회 "자영업자 희생 담보하는 상황 타개해야"
13일 지난 7일 숨진 채 발견된 자영업자 ㄱ(57)씨가 운영하던 서울 마포구의 맥줏집 문 앞에 출입 통제 테이프가 둘려 있다. 문에는 ㄱ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고, 바닥에 흰 국화가 놓여 있다.

13일 서울 마포구의 한 맥줏집 문 앞에는 6월23일자로 가스를 끊겠다는 도시가스 요금 미납 안내문과 지난달 말 구청에서 보낸 등기 우편물 도착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굳게 닫힌 문 아래에는 ‘일수’와 ‘당일 대출’을 광고하는 명함이 놓여 있었다. 오랜 기간 영업을 하지 않은 듯 가게 내부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켜켜이 먼지가 쌓여있었고, 바닥에는 휴짓조각과 찢어진 포스터가 나뒹굴었다.

맥줏집 주인 ㄱ(57)씨는 지난 7일 이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년 넘게 맥줏집을 운영해왔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영난과 생활고에 더는 버티지 못한 그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날 맥줏집과 온라인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출입 통제 테이프가 둘린 맥줏집 문에는 ‘편히 쉬세요’, ‘천국 가셔서 돈 걱정 없이 사세요’ 등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이창호 전국호프연합회 대표는 낮 12시30분께 맥줏집을 찾아 흰 국화를 놓았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내 일 같아 안타깝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전국호프연합회는 성명문을 내어 “코로나19 상황이 2년째 이어지면서 차츰 지쳐가고, 정부의 주먹구구식 방역정책으로 매출은 반의반 토막으로 급락하였으며 영업제한 조치가 강화된 지난해 말부터는 버틸 힘조차 뺏겨버렸다”며 “고인의 안타까움은 저희 모두의 상황과 똑같았다”고 밝혔다. 연합회는 “방역당국과 정부는 올바르고 형평성 있는 방역정책을 펼쳐 자영업자만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작금의 사태를 타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ㄱ씨는 1999년 서울 마포구에서 맥줏집을 열면서 자영업을 시작해 식당, 일식주점 등 4곳을 운영하다 몇 년 전부터 다른 가게를 정리하고 100석 규모의 맥줏집 한 곳을 운영해왔다. 그는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지인이 발견해 신고했고, 발견 당시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난 상태였다”며 “타살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ㄱ씨가 운영하던 맥줏집은 방송에 소개되는 등 인기를 끌었지만,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 맥줏집에서 일했던 직원 ㄴ씨는 “코로나19 전에는 예약 손님만으로도 자리가 다 찰 때가 많고 하루 매출이 200~300만원이었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점차 줄더니 최근에는 10만원 밑으로까지 뚝 떨어졌다”며 “코로나19 전에는 직원도 8명이었는데 최근에는 직원을 1명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ㄱ씨는 코로나19로 사정이 어려워지자 거주하던 원룸을 빼 직원들의 월급을 줬다고 한다. ㄴ씨는 “사장님이 코로나19로 월세와 대출, 직원 월급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몇 달 전 살던 원룸을 빼 직원들 월급을 주는 데 사용했다”며 “평소에도 항상 직원들을 잘 챙겨주시던 착하고 좋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13일 지난 7일 숨진 채 발견된 자영업자 ㄱ(57)씨가 운영하던 서울 마포구의 맥줏집 문 앞에 도시가스 요금 미납 안내문이 붙어 있다.

ㄱ씨는 최근 인근 자영업자에게 장사가 잘되지 않아 힘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맥줏집 건너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아무개(54)씨는 “두 달 전 ㄱ씨가 커피를 마시러 와서 ‘요즘 장사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봐 ‘힘들죠. 사장님은 어떠세요?’라고 되물었더니 ‘저희는 말할 것도 없이 힘들죠’라며 한숨을 쉬었다”고 전했다. 15년 전부터 이 카페에서 일했고 7년 전부터는 카페를 운영했다는 박씨는 “오랫동안 맥줏집을 지켜봤는데, 코로나19 전에는 3층 테라스까지 손님이 꽉 차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맥줏집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려고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도 많았다”며 “코로나19 이후에는 맥줏집이 문을 열어도 손님이 2~4명 정도뿐이었고, 최근에는 문이 아예 닫혀 있었다”고 말했다.

인근 자영업자들은 ㄱ씨가 따뜻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항상 앞치마에 책가방을 메고 다닐 정도로 검소하고, 장사밖에 모르는 성실한 분이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영정 사진 속 고인 도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었다. 맥줏집 인근에서 4년째 중국집을 운영해온 이아무개(51)씨도 “저녁에 바비큐 등 음식이 남으면 저희 가게에 들러 나눠주시곤 했던 따뜻한 분”이라며 “저희 가게에서 직원들 식사도 자주 사주는 등 직원들을 잘 챙겨 직원들도 ㄱ씨를 많이 따랐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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