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전화' 통쾌하게 때려잡는 영화 '보이스'.."피싱, 피해자 잘못이 아닙니다"

유경선 기자 2021. 9. 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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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극중 한서준(변요한)은 복수를 위해 중국 선양의 보이스피싱 조직 본거지에 잠입한다. CJ ENM 제공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비대면 뒤에 숨어 세 치 혀로 사람을 꾀어내는 비양심, 고혈 같은 재산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가로채는 악랄함을 탓해야 한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작년에만 7000억원 정도다. ‘그렇게 중요한 돈을 왜 전화 한 통에 홀랑 넘겼느냐’는 타박이 피해자들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영화 <보이스>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을 탓해선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강조한다.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한다는 영화적 통쾌함은 덤이다. ‘쌍둥이 감독’ 김곡·김선 감독은 지난 6일 화상 기자회견에서 “정작 당하면 속지 않을 수 없다”며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란 말을 꼭 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전직 경찰인 주인공 한서준(변요한)은 부산의 한 건설현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한다. 현장소장이 보이스피싱에 속는 바람에 작업반원 개인정보 전체가 유출되고, 총 30억원의 피해를 입는다. 서준의 아내도 7000만원을 송금했고 그 충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한다. “그 돈 없으면 저 죽어요”라는 아내의 애원에 범인은 “7000만원에 죽을 목숨이면 죽어도 된다. 돈 잘 쓸게요”라고 우롱한다. 서준은 30억원을 되찾기 위해 중국 선양의 조직 본거지에 잠입한다. 그의 분노는 범인을 찾아 “죽일 거야”라고 말할 만큼 강렬하다.

서준의 눈앞에 콜센터의 비인간성이 펼쳐진다. 서준 부부의 7000만원을 빼앗은 곳이다. 전화기 앞에 앉은 4인 1조 조직원들은 대본에 쓰인 대로 역할을 분담한다. 피해자의 휴대전화는 이미 악성 애플리케이션으로 지배당하고 있다. 수사기관 사칭 전화를 받은 피해자가 해당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려 해도, 그가 거는 전화는 꼼짝없이 다시 보이스피싱 콜센터로 연결된다. 조직원들은 형사와 은행 직원, 금융감독원 직원 연기를 넘나든다. 인간성을 상실한 이들은 “이 XX 완전 쫄았다”면서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서로 “연기 많이 늘었다”며 웃기도 한다.

영화 <보이스>의 한 장면. CJ ENM 제공
보이스피싱 조직의 ‘브레인’인 곽프로(김무열)는 인간성을 상실한 채 보이스피싱 범죄를 총설계하는 인물이다. CJ ENM 제공

조직의 ‘브레인’인 곽프로(김무열)는 인간성을 잃을대로 잃은 얼굴을 하고 있다. 서준의 아내와 통화한 목소리 주인공이다. 대본을 설계하는 그는 “팩트체크는 ‘구라’의 기본”이라고 역설하거나 “무지와 무식이 아닌, 희망과 공포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보이스피싱 철학을 강의한다. “기왕 먹는 거 맛있게 먹어야지. 이 바닥에선 남의 고통을 먹고 사는 건데. 웃어, 즐겨”라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마수는 취업준비생의 희망과 공포에까지 뻗친다. 300억원 규모에 ‘적중률’ 80%를 웃도는, ‘회심의 설계’다. “지옥도 우리 편”이라며 웃는 김무열의 악에 받친 연기가 인상적이다.

결말은 한서준이 주도하고, 한국 경찰과 중국 공안이 합작해 말단부터 총책까지 일망타진하는 속시원한 권선징악이다. 현실에선 대부분 중국·태국·필리핀 등에 본거지를 두고 점조직으로 활동 중이고, 잡아도 인출책·수거책 선에서 꼬리가 끊긴다. 발신번호를 조작하는 중계 장비는 계속 위치를 바꾸며 추적을 피하기 때문에 몸통을 치기란 쉽지 않다.

김선 감독은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힐링이 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며 “보이스피싱에 경각심을 느끼셨으면 좋겠고, 통쾌한 영화적 재미도 가져가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곡 감독은 “범죄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범죄에 맞서는 영화이길 소망한다”고 했다.

영화 <보이스> 포스터. CJ ENM 제공


보이스피싱 본거지에 관해 알려진 내용들이 적었던 만큼 제작에 어려움도 있었다. 김곡 감독은 “실체조차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해 미술이나 영화 연출을 준비하며 애를 많이 먹었다”며 “본거지의 디테일이 드러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상상으로 구현한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김선 감독은 “실제 보이스피싱 집단이 사용하는 대본 유출본이 조금 남아 있었다”며 “(대본) 양도 수법도 굉장히 다양하고 악랄했다”고 전했다.

극중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이규호 팀장(김희원)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많은 피해자들이 자책하는데, 피해자 잘못이 아닙니다. 그놈들이 악랄한 겁니다”라고 말한다. 변요한은 “피해자의 마음을 대변하고 싶었고, 나란히 걷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무열은 “명절에 부모님을 모시고 본다면 ‘보이스피싱 백신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15일 15세 관람가로 개봉한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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