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km짜리 일산대교를 둘러싼 두가지 '공익' 충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지원 기자 2021. 9. 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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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강다리 중 유일하게 유료인 일산대교의 통행료가 오는 경기도의 공익처분에 따라 10월부터 무료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추진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역주민의 통행권을 사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일산대교 대주주인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자금인 기금의 수익성 원칙을 흔들어선 안된다고 본다. 한치의 양보 없는 두 공익의 충돌은 7년째 계속되고 있다. 오랜 싸움을 쟁점 별로 분석했다.

■일산대교 통행료는 진짜 비쌀까

민간도로는 국가 예산이 투입된 재정도로(한국도로공사 운영)보다 통행료가 비싸다. 사업자는 한정된 기간 내에 투자금과 수익을 회수해야 한다. 요금이 비싸고 매년 물가상승률도 반영되는 이유다.

일산대교를 건너는 1종 승용차의 통행료는 1200원이다. 경기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일산대교 통행료는 재정도로 평균에 비해 1.47배 높지만, 이는 국토교통부 관할 22개 전국 민자도로의 평균(1.47배)치와 동일하다. 그럼에도 일산대교 이용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 건 어쩌다 한번 이용하는 고속도로와 달리 매일 출·퇴근길을 오가는 만큼 월 지출이 크기 때문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지난달 열린 민자도로 관련 토론회에서 “일산대교는 유의미한 대체 도로가 없다는 점에서 유로도로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년 손실보상금만 수십억원…어디부터 꼬였나

이 지사는 국민연금이 폭리를 취한다면서 그 원인을 ‘셀프 대출’에서 찾는다. 국민연금은 단독주주인 ㈜일산대교에 연 8%대 선순위대출(1250억), 2014년부터 20%씩 적용된 후순위대출(360억원)을 실행했다. 연간 이자 수입이 160~170억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경기도는 수익률(2014년까지 추정통행료 수입의 76.6%, 2015~2038년 88%)을 보장해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MRG) 계약도 체결했다. 경기도가 높은 수준의 손실 보상을 약속한 건 투자 유인책이었다. 당시 상황을 아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산대교는 당시 정부의 인프라 지출 사업 중 후순위였다. 이용자가 많지 않아 지출 대비 국민 편익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민간 자본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MRG는 족쇄가 됐다. 다리를 놓고 보니 통행량이 적었다. 2013년 인천시 검단신도시 지구지정 취소 등 악재가 겹치면서 이용자는 더디게 늘었다. 이 때문에 2009년부터 8년간 누적 적자가 557억원에 달했다. 순이익은 실제통행량이 추정치에 근접하기 시작한 2017년부터 나기 시작했다. 통행량이 추정치와 같아도 MRG 부담은 계속됐다. 지난해 통행량은 추정치의 103%를 달성했지만 수익률은 목표치를 따라잡지 못했다. 경기도는 2009년부터 10년간 총 427억원을 MRG로 지급했고 앞으로 2038년까지 698억원이 더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는 왜 조정을 못했나

MRG는 정부 재정을 축 낸다는 비판이 높아지며 2009년 폐지됐다. 기재부는 일산대교·인천공항철도 등 기존 사업은 유지하는 대신 자금재조달 및 사업재구조화 조정을 시작했다. 대출금리가 사업 시작 때보다 크게 낮아진 점을 이용해 민간 사업자의 자금 조달을 바꿔 금리 부담을 낮춰주고, 대신 MRG 비율을 내리는 대가를 얻어냈다. MRG비율이 기존 90%에서 58%로 낮아진 인천공항철도 등 총 12개 사업에서 MRG 부담이 낮아졌다. 하지만 일산대교는 이런 조정에서도 빠졌다. 국민연금은 출자자와 대출자가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매개로 MRG 인하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공공성 원칙과 수익 증대 책무

2015년 경기도는 국민연금에 MRG 비율 조정을 압박하려고 2013년도분 보전금 41억9000만원을 주지 않고 미뤘다가 소송에서 패소했다. 그해 국민연금 대체투자실은 경기도 주재 토론회에서 경기도의 조정 제안을 모두 거절하며 ‘국민연금법 102조’를 앞세웠다. 102조는 “재정의 장기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수익을 최대한 증대시키도록 운용해야 한다”는 국민연금 책무에 대한 것이다. 실제 국민연금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며 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지자 수익률 높이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코로나19에도 지난해 국민연금 금융부문 운용수익률은 9.58%로 최근 10년 동안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을 거뒀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위험을 감수하고 일산대교 투자에 뛰어들었고 김포신도시가 들어선 이후에야 이득을 보기 시작했다. 손해 볼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와서 경기도에 무기력하게 빼앗기면 그 자체로 국민연금은 황금알을 놓친 배임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지사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원칙을 지키라”며 국민연금 운영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학계에서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 방안은 수익성뿐만 아니라 시장 역기능을 보완하는 투자 성격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국민연금 보험료 징수 자체가 가계 저축여력을 감소하고 지방 재정을 줄이는 역기능이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국민연금의 인프라 투자는 수익성과 공공성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사업으로 꼽혔는데, 그간 전자가 압도적으로 우선됐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민연금기금보고서를 보면, 일산대교 같은 국내 인프라 투자는 2002~2018년까지 종료 사업 기준으로 총 2조1200억원을 투입해 11% 수익률이 났다. 기재부 관계자는 “통상 4~5% 수익도 일반 민자 사업에서 굉장히 큰 규모인데 국민연금은 투자 목표를 통상 8%로 잡고 투자에 나선다”고 말했다.

■선거 앞둔 포퓰리즘인가

경기도 관계자는 “공익처분은 경기도가 아닌 국민연금이 먼저 제시했다”고 밝혔다. 공익처분시 보상금 액수는 법원이 결정하는데 한쪽에서 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행정 소송으로 간다. 양측이 예상하는 보상 액수 간극이 크기 때문에 소송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데, 경기도의 승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모 변호사는 “공익처분 효력을 정지하지 않는 이상 대선이 끝날 때까지 소송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대선을 앞두고 예비후보인 이 지사가 던진 승부수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선거 캠프 관계자는 “이 문제는 2015년부터 경기도가 꾸준히 국민연금에 매입 등 모든 안을 가지고 협상을 시도했던 만큼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 아니다”며 “협상을 통해 손실분을 조율해 보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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