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칼럼] 뭉개진 자존심은 서울 생존을 도울까?

김형중 2021. 9. 13. 16: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골닷컴] 2021년 1월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회장은 프랭크 램퍼드를 내치고 토마스 투헬 감독을 영입했다. 감독 한 명 바꿨을 뿐인데 첼시는 다른 팀으로 돌변했다. 리그 10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더니 급기야 UEFA챔피언스리그까지 제패했다.

지금 FC서울도 첼시처럼 시즌 도중 감독을 바꿨다. 전북전 3-4 패배 직후 박진섭 감독은 결심한 듯한 말을 남겼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사임했다. 지동원 영입에 명운을 걸었다던 강명원 단장도 함께였다. 언론은 관성적으로 ‘초강수’라고 보도했지만, 사실 축구단이 시즌 도중 위기를 타파할 방법은 감독 교체 외에 딱히 없다. 선수단 전체를 바꿀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팀의 머리만 갈아 끼우는 것이 거의 유일한 비상조치이며 새로 장착한 머리가 기대대로 작동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위기 속에서 서울이 뽑은 카드는 안익수 전 선문대 감독이었다. 과거 서울에서 코치 경력이 있는 데다 호랑이 같은 이미지가 흐트러진 분위기를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인 것 같다. 이제부터 안익수 감독은 ‘스멜링 솔트’가 되어 선수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해야 한다. 암모니아 함유량이 부족했는지 9월 12일 성남전에서도 서울은 반등하지 못했다. 나아졌다는 인상과 달리 성남전의 서울도 순위표의 정당성을 재확인할 뿐이었다. 전북전에 이어 서울의 슈팅 시도는 한 자릿수(9개)였다. 나아졌다, 좋아졌다 등의 평가 속에서 서울의 현실은 7경기 연속 무승이다.

달라진 점도 있긴 했다. 후반전 이례적 경기 운영이다. 안익수 감독은 후반 22분, 31분에 각각 투입됐던 팔로세비치와 이인규를 후반 40분이 되자 다시 뺐다. 팔로세비치의 출전시간은 18분, 이인규는 9분이었다. 팔로세비치는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였다. 경기 후, 안익수 감독은 당시 상황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를 간절히 빌었다. 별 이유가 없는 쪽이 두 선수에겐 훨씬 가혹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냥 네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 식의 이유라도 있는 편이 낫다. 갑자기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생각났다.


승점 1점에 그친 뒤, 안익수 감독은 승점이나 잔류 같은 현실적 과제보다 ‘FC서울다운 모습’, ‘서울만의 차별화된 스토리’ 등 담론을 폈다. 한편으로 여전한 캐릭터가 반갑기도 했다. 과거에도 안익수 감독의 문장에서는 비전, 가치, 노력, 헌신 등 자기개발적 표현들이 애용됐다. 알다시피 안 감독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고등학생 때 축구를 시작해서 K리그 우승은 물론 월드컵 대표까지 경험했다. 쉽게 말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축구인이다. 대화를 끝내고 돌아서면 내 머릿속에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란 구절이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크고 넓은 이야기를 하는 지도자.

문제는 현재 상황이다. 성남전 후에도 서울은 다이렉트 강등 순위인 12위다. 앞으로 남은 10경기에서 모든 것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감독 교체라는 계기, 직접 순위 경쟁 ‘식스포인터’라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었던 성남전에서도 서울은 무승부에 그쳤다. 서울이 안익수 감독을 선택한 배경에는 방향성 제시보다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달라는 급한 마음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 서울은 장기적 비전 추구보다 눈앞에 대롱대롱 매달린 승점 3점이 훨씬 급하다. 일단 올 시즌 살아야 스토리도 말할 수 있고 차별화도 가능하다. 꼴찌의 현실과 신임 감독의 말은 상호작용하기 어려울 만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팔로세비치와 이인규의 드문 재교체는 안익수 감독 나름의 메시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존심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선언 말이다. 어느 팀이든 중간에 들어온 새 감독은 기존 체제의 부정과 특정 선수를 향한 충격요법을 구사하기 마련이다. 교체로 기용한 선수를 다시 빼는 조치는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공포스러운 경고가 될 것이다. 세상이 다 지켜보는 TV 생중계 경기 도중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썩은 사과’를 도려내는 것만큼 확실한 문제해결은 없겠지만, 그 판단은 정확해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두 명의 뭉개진 자존심이 팀 분위기에 어떻게 작용할지가 궁금해진다.

글 = 홍재민

Copyright © 골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