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원로배우 윤양하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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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검객물 영화 붐의 주역이었던 원로배우 윤양하(본명 윤병규)씨가 지난 4일 오후 8시께(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13일 오후 7시30분(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센터빌의 '함께하는 교회'(목사 이승희)에서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이대근, 이구순, 원미경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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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검객물 영화 붐의 주역이었던 원로배우 윤양하(본명 윤병규)씨가 지난 4일 오후 8시께(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13일 유족은 "아버지가 낮잠을 주무시다가 깨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40년 5월1일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고인은 순창농고 재학 시절 군 단위 씨름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는 등 씨름선수로 활약하는 한편, 영화배우의 꿈을 키웠다. 유도대학(현 용인대)에 다닐 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지만, 1964년 도쿄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 탈락하자 충무로의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다니며 학원에 출강하던 김수용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고인은 1967년 김 감독의 영화 '산불' 단역을 거쳐 같은해 김 감독의 작품 '빙점'에서 조연을 맡으며 영화배우로 정식 데뷔했다. 고인이 이름을 날린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검객물 붐이 일었을 때였다. 상투를 틀고, 턱에 수염을 붙이고, 들짐승 가죽 옷을 입고 날카로운 검을 든 모습으로 '월하의 검', '필살의 검', '내장성 대복수' 등 검객물 20여편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70년대 후반 검객물 붐이 쇠퇴하자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1), '물레방아'(1986), '씨받이'(1987) 등 토속물과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 '일송정 푸른 솔은'(1983), '퀵맨'(2002), '란의 연가'(2003)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김수용·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활약했다.
1985년에는 한국영화인협회 영화배우분과위원장, 1986∼1988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맡아 일부 영화사에 영화 제작 독점권을 준 영화법 개정 운동을 폈고, 1996년 제15대 총선에 전북 순창·임실 지역구에서 출마한 적도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대한유도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유도 대표팀 단장을 맡았다. 유족은 부인 서성미씨와 사이에 두 아들이 있다. SBS 공채7기 탤런트인 윤태웅씨, 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윤세웅씨다. 장례식은 13일 오후 7시30분(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센터빌의 '함께하는 교회'(목사 이승희)에서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이대근, 이구순, 원미경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김대성기자 kdsu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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