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2.0] "화가의 삶을 이해하고 그림을 보면 더 많은 것이 보여요"

이효정 기자 2021. 9. 1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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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도서관이 마련한
김은영 교수의 '라이벌 열전, 조선시대 편'
서울 명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미술작품에 얽힌 화가의 삶 들려줘
김은영 경희대 미술대학 겸임교수가 지난 10일 서울 명일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강의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인 정선과 심사정의 삶과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백상경제연구원
[서울경제]

지난 10일 서울 명일여자고등학교 정보교육관에 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특별한 강의가 열렸다. 전문가로부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삶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마련된 것. 강동도서관이 지역 청소년의 인문학 사고를 높이기 위해 준비한 강좌였다. 김은영 경희대 미술대학 겸임교수가 강의를 맡았다.

김 교수는 “동시대를 살아간 두 거장인 겸재 정선(1676~1759년)과 현재 심사정(1707~1769년)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정선에 대한 설명을 먼저 시작했다. 정선은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일찍이 능력을 인정받아 주변에 좋은 친구들과 스승들이 많았다. 그중 이색의 후손이자 천재 시인인 사천 이병연(1671~1751년)을 빼놓을 수 없다. 김 교수는 “정선과 이병연은 평생 각별한 친구였으며 정선의 그림에 이병연이 시를 붙여 작품을 이룬 것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정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에도 그들의 우정이 담겨있다”며 스크린에 ‘인왕제색도’를 크게 띄워 보여줬다. “마치 먹구름에 쌓인 듯 시커멓게 붓질한 인왕산의 모습이 어딘가 슬퍼 보이지 않는가”라고 묻자 학생들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림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는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일흔 여섯 살에 그린 것으로 당시 이병연은 병으로 위중했었다”며 “그림 속 기와집이 이병연의 집이라는 가설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정선은 특히 금강산을 많이 그렸다”며 ‘금강전도(국보 제217호)’를 포함해 정선이 그린 금강산 작품들을 보여줬다. 그는 “요즘 같이 드론을 띄워 사진을 찍을 수도 없던 시대에 금강산의 봉우리들을 한눈에 내려다 본 것 같은 절경을 어떻게 보고 그렸을까”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의 질문에 학생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선은 당시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금강산의 봉우리마다 직접 올라 눈으로 본 모습들을 종합해 그림으로 담아낸 것”이라고 김 교수가 설명하자 학생들은 감탄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정선의 제자이자 당대 최고의 화가인 심사정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심사정의 집안은 사대부였으나 그의 조부가 역모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집안이 몰락했다. 이로 인해 심사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뿐 아니라 여행을 다니는데도 제약이 많았다. 심사정은 특히 꽃과 새를 많이 그렸다고 설명한 김 교수는 심사정이 그린 화조도(花鳥圖)를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심사정이 화조도를 많이 그린 이유에 대해 “장식용으로 활용되는 그림을 많이 그려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사정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담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도 많이 그렸다”며 산천을 담은 심사정의 그림들을 보여줬다. 그는 “심사정은 산을 직접 올라 눈으로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관념산수(觀念山水)라고 해서 산의 모습을 상상해 그림으로 담아냈다”며 “사생을 나가는 것이 돈이 많이 들고 역적 집안의 신분으로 여행도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심사정의 삶을 이해하고 그의 관념산수를 보면 안쓰럽다”며 “심사정의 그림이 직접 산을 보고 그린 정선의 것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해 학생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림을 볼 때는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작가의 삶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며 “시대의 배경과 화가의 삶을 이해하고 그림을 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그림은 보는 사람이 개입해서 해석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며 “이것이 그림이 갖고 있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술을 알면 훨씬 풍성한 삶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강동도서관이 마련한 김 교수의 ‘라이벌 열전, 조선시대 편’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명일여고 2학년 박준서 양은 “조선시대 최고 화가들의 삶과 그림에 담긴 뒷이야기를 알게 돼 재밌었다”며 “우리나라 미술과 더불어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만든 강의였다”고 밝혔다.

노권우 명일여고 국어 교사는 “교과서에 실린 그림들을 화가의 삶과 연결해 설명함으로써 조선시대의 역사와 그림에 대한 학생들의 견문을 넓혀준 강의였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

이효정 기자 hj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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