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변요한이 리암 니슨은 아니잖아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1. 9. 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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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전화금융사기 수법인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은 한때 노인들이나 세상 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들이나 속아 넘어가는 것이라 취급됐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약 7000억 원에 달한다. 연령대별 피해자를 봐도 60대와 70대 이상이 16%, 20대 17%, 30대 14%, 그리고 한창 사회생활이 활발할 40대와 50대 피해자가 53%일 정도로 노인 한정 수법이라는 것은 옛말이다. 그만큼 보이스피싱 수법이 나날이 지능화, 조직화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때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한 한국 최초의 영화 '보이스'(김선•김곡 감독)가 개봉한다. 누구나 알고 겪어 보기도 한, 친숙하지만 다뤄본 적 없는 신선한 소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보이스'의 주인공 서준(변요한)은 건설 현장에서 작업 반장으로 일하는 전직 형사다. 윗선을 잘못 건드려 경찰을 그만뒀지만 현재 내 집 마련과 승진을 목전에 앞둔 기분 좋은 상황. 이때, 서준의 아내 미연(원진아)에게 서준의 친구라는 김현수 변호사의 전화가 걸려오며 불행이 시작된다. 남 일로 들을 땐 '그걸 왜 속냐' 싶지만 상황을 보면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보이스피싱이다. 숨을 제대로 고를 틈도 없이 쏜살같이 일이 벌어지고, 미연은 아파트 중도금 7000만 원을 잃고 망연자실한다. 돈을 잃은 미연에게 경찰은 "그 큰돈을 전화 한 통에•••"라며 혀를 차고, 휴대폰 너머 사기꾼의 목소리도 조롱을 던진다. 누구라도 깜빡 속아 넘어갈 만한 상황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며 '보이스'는 초반 관객의 공감을 사는 데 성공한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문제는 그 이후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충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한 아내를 보며, 그리고 같은 피해로 약 30억 원의 피해를 입고 삶이 무너진 동료들을 보며 치를 떨던 서준은 보이스피싱 조직을 잡고자 직접 나선다. 그런데 서준이 아무리 전직 형사라 쳐도 현실감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 마약 수사 쌓은 노하우와 해커 깡칠(이주영)의 도움으로 비교적 손쉽게 중국 선양의 보이스피싱 조직 본거지에 잠입하고, 아내를 속였던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보이스피싱의 전체 대본을 관리하는 곽프로(김무열) 등을 마주하면서 그들의 정보를 밖으로 빼돌리려 한다. 이 과정에서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펼쳐지는 고강도 액션과 추격전은 필수. 혈혈단신 펼치는 서준의 활약은 그야말로 '테이큰'에서 전직 특수요원으로 활약했던 브라이언(리암 니슨) 뺨친다. 아니, 대한민국 경찰의 능력을 하찮게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리암 니슨은 특수요원이었다고.

'보이스'는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보이스피싱의 위험성을 알리고,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 위로하는 데는 훌륭하지만 그뿐이다. 서준과 곽프로를 연기한 변요한과 김무열의 온몸을 내던진 열연이 눈에 보이지만 감정적 호응은 되지 않는다. 변요한과 김무열의 잘못은 아니다. 장르의 힘에만 기대어 무리수를 연달아 두고, 허술한 인과관계와 식상한 전개, 판에 박힌 듯한 캐릭터로 힘을 빼기 때문이다. 아무리 변요한이 연기를 잘하고, 김무열이 호응을 해준다 한들, 캐릭터와 서사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니 별 수가 있나. 그나마 밀가루로 빚은 듯 말끔한 얼굴로 탐욕에 눈알을 희번득거리는 곽프로의 캐릭터가 조금 눈에 띄는 정도. 정작 뛰고 구르고 떨어지고 맞고 때리며 사투를 벌인 변요한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물론 '보이스피싱 백신 영화'라고 홍보하는 것처럼 보이스피싱의 악랄한 세계를 보여주는 점은 빼어나다. 개인정보 유출부터 누구라도 속아 넘을 법한 깜쪽 같은 본거지 기획실의 대본, 대규모로 움직이는 콜센터, 악성 앱 설치와 발신번호를 조작하는 변작기, 보이스피싱으로 입금된 돈을 재빠르게 인출하는 인출책과 돈의 흐름을 추적하지 못하게 환전 형태로 인출하는 환치기 등 소름을 유발하는 보이스피싱 과정이 낱낱이 펼쳐지니까. 제작진의 꼼꼼한 자료 조사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보이스피싱은 공감이야. 상대의 희망과 두려움을 파고드는 거지"라며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맞춤형 대본으로 피해자의 돈을 갈취하는 보이스피싱의 악랄함을 묘사하는 데 이만한 표본이 없을 정도.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15일 개봉하는 '보이스'. 개봉 타이밍이 절묘해 보인다. 코로나 때문에 인원 제한은 있을지언정 가족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고 가벼운 영화관 나들이 갈 때 맞춤한 영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영화를 접하고 난 뒤 아쉬움이 들었던 나만 해도 '엄마에게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코로나로 여전히 갑갑한 요즘, 장르적 쾌감과 대리만족을 원하는 이들에게도 '보이스'가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아, 경찰을 가족으로 둔 이들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다. 대중문화에서 대한민국 경찰조직이 항상 한 발 늦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익숙한 일이지만, '보이스'가 한층 더 복장이 터지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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