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만에 발견돼 12시간 만에 발굴된 무령왕릉의 모든 것

공주=조상인 기자 2021. 9. 1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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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71년 7월 5일, 백제 왕성이던 웅진의 유적을 품은 충남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현재 명칭은 무령왕릉과 왕릉원)에서 5·6호분 배수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백제의 기술 수준과 대외 교류 등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전개됐다.

한수 국립공주박물관장은 "발견과 동시에 수많은 화젯거리와 수수께끼를 동시에 안겨준 무령왕릉의 모든 것을 살펴보는 이 전시가 웅진백제의 상징인 무령왕릉이 가진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새롭게 주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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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발굴 50주년 특별전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관꾸미개 장식은 국보로 지정됐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서울경제]

때는 1971년 7월 5일, 백제 왕성이던 웅진의 유적을 품은 충남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현재 명칭은 무령왕릉과 왕릉원)에서 5·6호분 배수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분주한 인부의 삽 끝에 벽돌이 걸렸다. 천 년도 더 된 고분지역에서 느닷없는 벽돌이 발견되자 현장은 술렁였다.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등 정부에 긴급 보고가 타전됐고, 7일 오전에는 고고학자 김원룡(1922~1993) 서울대 교수의 발굴단이 현장을 찾았다. 벽돌무덤이었다. 도굴 한 번 당하지 않고 1,500년 가까이 원래 모습을 간직한 백제 무덤이라니, 기적이었다.

국립공주박물관의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 전경. /사진제공=국립공주박물관

무덤 입구의 지석에 새겨진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무덤 주인이 백제 제 25대 무령왕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백제를 강국으로 부흥시킨 무령왕은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옮긴 성왕의 아버지다. 무덤 주인이 확인된 왕의 고분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계묘년(523년) 5월 7일 승하해 을사년(525년) 8월 12일에 안장했다는 무덤 축조 시기까지 정확히 기록됐다. 하지만 발견의 감격은 짧았다. 새로운 백제왕릉 발견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취재진과 인근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인파에 유물이 밟혀 부서지고 유적이 흐트러질 지경의 통제 불능 상태가 되자, 발굴단은 피난 가는 심정으로 유물을 쓸어 담았다. 1,442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 발굴은 단 12시간 만에 끝났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등 정부 관계자들의 “빨리 보고하라”는 재촉이 있었다는 뒷얘기는 한참 뒤에야 알려졌다.

무령왕릉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진묘수.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무령왕릉의 출토 유물 5,232점 전체가 처음으로 한 자리에 전시됐다. 국립공주박물관이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특별전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를 통해서다. 왕과 왕비의 장신구 등 출토품 전체에 관련 유물을 더해 총 136건 5,283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무령왕릉이 열리자 맨 처음 사람들을 맞은 것은 무덤 앞을 지키고 섰던 신성한 동물 ‘진묘수’였다. 악령이나 도굴꾼을 막고자 한 본래 목적에 충실했던 진묘수는 이후 국보로 지정됐다. 상설전시실 입구에서 만나는 ‘은잔’에는 신선·용·봉황·연꽃·사습·나무를 비롯해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한 인면조신(人面鳥身)이 섬세하게 새겨있다. 백제인이 꿈꿨던 이상향을 의미한다. 왕과 왕비의 관꾸미개, 금귀걸이, 청동거울 등은 진열장 안에 놓여있지만 저반사유리를 사용해 밖에서도 정교한 장식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왕과 왕비의 목관을 3D 스캔해 실제 크기로 전시한 것도 눈길을 끈다. 무령왕과 왕비의 목과 발을 받치던 베개와 발받침은 나무로 제작됐기에 손상 우려가 있어 장기간 전시를 할 수가 없다. 그간 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는 복제품을 선보여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만 14일부터 26일까지 ‘진품’을 모두 공개한다. 이후에는 왕의 유물과 왕비의 유물이 번갈아 전시될 예정이다.

국보로 지정된 무령왕릉 왕과 왕비의 베개와 발받침.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백제의 기술 수준과 대외 교류 등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전개됐다. 김원룡 교수가 생전에 가장 큰 실수였다며 수차례 후회한 무령왕릉 발굴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이후 시행된 고고학적 발굴 과정이 더욱 신중해진 것 또한 성과다.

한수 국립공주박물관장은 “발견과 동시에 수많은 화젯거리와 수수께끼를 동시에 안겨준 무령왕릉의 모든 것을 살펴보는 이 전시가 웅진백제의 상징인 무령왕릉이 가진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새롭게 주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6일까지.

공주=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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