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이야기'와 '성경'..신에게 부여받은 '특권' 통제 못하면 추락

기자 2021. 9. 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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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이야기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⑦ 인간과 자연의 공존

‘태양의 신’ 마차 탐한 파에톤

지구 망가뜨리고 비참한 최후

“땅 정복하라” 신이 준 권한에

과욕 부리다간 ‘파멸의 길’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아무나 추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날개가 있는 자만이 추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파에톤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자식이었다. 하지만 헬리오스는 파에톤의 어머니와 하룻밤 인연을 맺은 후 떠났고, 그 이후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파에톤은 헬리오스의 아들이라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망상에 사로잡힌 허풍쟁이로 여겼다.

굴욕을 참다못한 파에톤은 마침내 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힘든 여정 끝에 그는 동쪽에 있는 헬리오스의 궁전에 도착했다. 헬리오스는 반갑게 파에톤을 맞이했다. 그는 매일 네 마리의 말이 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창공을 달리면서 파에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파에톤은 진실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단 하루만이라도 태양 마차를 몰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헬리오스는 난감했다.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스틱스 강에 대고 맹세했는데, 그럴 경우 신들조차 무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에톤은 왜 그런 요구를 했을까? 그는 자신을 무시하던 친구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아버지 곁에 있는 찬란한 태양의 마차를 몰아봄으로써 자신이 진정 헬리오스의 아들임을 체감하고 싶었던 것이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는 마침내 태양 마차 위로 올랐다. 마치 태양의 신이라도 된 것처럼 가슴이 뛰고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과욕이었다. 마차에 올라 말고삐를 잡고 출발하는 순간, 잘 될 것만 같았던 모든 것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말들을 제어하지 못해 높이 솟구치자 땅은 온기를 잃고 얼어붙었고, 땅으로 곤두박질치듯 질주하자 태양의 열기에 대지가 불타올랐다. 샘과 강과 호수가 말랐고 온갖 곡식과 식물들이 타죽었으며 도시는 아수라장이 됐다. 한 인간의 욕망이 세상을 파괴한 것이다.

지난여름, 그리스와 터키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불타오르고, 북극에서 엄청난 크기의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이상기후의 광경을 보며 파에톤의 무모한 도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지구를 태우고 병들게 하는 현실이 그 옛날 파에톤의 신화에 이미 예고돼 있었던 셈이다.

기독교 성경에서 신은 6일 동안 세상 만물을 만들고 그 마지막 날에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빚은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 이 말에 힘입어 인간들이 목에 너무 힘을 주고 기고만장한 건 아닐까? 파에톤이 그랬듯 지금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을 무분별하게 낭비하고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욕을 부린 파에톤의 최후는 비참했다. 세상이 망가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 제우스가 벼락을 던져 파에톤이 타고 있던 태양 마차를 박살 냈다. 그 서슬에 파에톤은 창공에서 땅바닥으로 하염없이 추락했다. 그 모습 또한 우리 인간의 참혹한 미래에 대한 예고일지도 모른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파에톤의 비석에 적힌 글이 나온다. “여기 파에톤 잠들다. 아버지의 마차를 몰던 그는 그것을 통제하지 못했고, 엄청난 일을 감행하다 추락했도다.”(II, 327∼328) 서양인들은 인간을 신의 자식으로 그리곤 한다. 그만큼 엄청난 능력과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엄청난 문명을 이뤄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파에톤처럼 우리가 부여받은 특권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할 때, 참혹하게 추락하고 만다는 것을. 완벽한 파멸에 이르는 추락은 우리 인간 같은 존재가 쉽게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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