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왜 그때 차우찬을 말리지 못했을까 [안승호의 PM 6:29]

안승호 기자 2021. 9. 1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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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LG 차우찬. 이석우 기자


추신수는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지명타자로만 뛴다’는 조건으로 한국대표팀에 합류했다. 당시 추신수의 소속팀 클리블랜드에서 팔꿈치 보호를 이유로 ‘수비 불가’라는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대표팀에서 클리블랜드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은 없었다. 더구나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주도하는 WBC는 MLB 구단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한다.

지난 6월 도쿄올림픽 야구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차우찬이 포함됐을 때 그의 소속구단인 LG 내부 관계자들은 전전긍긍이었다. 어깨 부상 뒤 재활만 1년. 그제서야 일주일 1회 선발 등판이 가능해진 선수를 단기전 중 단기전인 올림픽 무대로 데려간다니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막아서고 싶었지만 두 팔 벌려 막지 못했다. 올림픽 같은 ‘신성한’ 무대. KBO리그에서는 구단이 소속팀 선수의 국제대회 차출을 거부하는 건 일종의 ‘불경죄’로 비춰질 수 있는 게 이쪽 정서이기 때문이다.

사실, 선수가 먼저 움직여주길 바랐지만 선수 생각은 달랐다. 어깨 부상 뒤 투수로서 흠집 난 가치를 다시 세우는데 국제대회만한 무대가 또 없었을 것이다. 차우찬도 보통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차우찬은 일본프로야구 진출이라 오랜 생각도 있었다. 2017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을 때 일본행을 저울질했던 차우찬은 이미 최적의 타이밍을 놓친 상황이지만 선수 입장에서 미련을 버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도쿄올림픽이라면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 최상의 무대였다.

또 하나, 운동 선수라면 누구나 국제대회 성적에 따른 연금을 기대한다. 연금은 운동 선수에게는 경제적 훈장 같은 것이다. 차우찬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연금 포인트가 10점에 불과하다. 연금 수령을 위해선 최소 20점이 필요하다. 올림픽에선 동메달을 따더라도 연금 포인트 40점이 추가된다.

선수 입장에서는 고민 속에서도 가야할 이유가 더 많았을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야구대표팀 투수코치로 김경문 감독을 보좌한 최일언 LG 인스트럭터의 역할이 다시 복기된다. 최 인스트럭터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LG 투수코치를 역임했던 베테랑 지도자다. 연투가 어렵고 부상 재발 위험이 여전하던 차우찬의 몸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만했다. 신성불가침 같은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LG 관계자들이 누구도 공개 입장을 표명하지 못할 때 구단과 선수의 입이 돼줄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차우찬이 결국 어깨에 칼을 댄다. 왼쪽 어깨 극상근 파열 및 관절 와순 손상으로 오는 22일 미국 LA의 컬란-조브 클리닉에서 수술대에 오른다.

2006년 WBC 대만전에서 김동주(당시 두산)가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을 하다 어깨를 다치는 등 경기 도중 부상을 입는 경우는 이따금 있었다. 그러나 프로야구 시대 이후로 어떤 투수도 대표팀에서 공을 던지다 수술대까지 오르는 경우는 없었다.

선수 입장에서는 미련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는 이는 ‘미련한 선택’이 됐다. 대표팀 지도자 입장에서는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으로 차우찬을 뽑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 ‘설마’가 투수 하나를 잡았다. 1987년생으로 우리나이로 서른다섯살. 어떻게든 어깨 수술을 받지 않으려고 지난해 1년 재활을 선택했던 그는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다음 등판 또한 기약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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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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