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투기판 된 스팩 공모, 규제 문턱 너무 낮다

정해용 기자 2021. 9. 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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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금융감독원은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에 대한 투자 주의보를 내렸다. 스팩은 다른 법인과의 합병을 유일한 목적으로 해, 상장하는 명목상 회사다. 금감원은 투자자들에게 스팩 공모 투자가 큰 손실을 일으킬 수도 있어 이를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스팩은 상장 후 3년간 인수‧합병할 기업을 찾아 인수‧합병(M&A)을 한다. 그러나 인수‧합병할 기업을 이 기간 내에 찾지 못하면 상장폐지와 해산 절차를 밟게 된다. 해산할 때 투자자들이 돌려받는 금액은 투자한 원금보다 적을 수도 있다.

금감원의 지적대로 최근 스팩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13일 상장되는 유진기업 인수목적7호(유진스팩7호)는 지난 2, 3일 이틀 동안 청약을 받았는데 증거금 9조8035억원이 모였다. 청약 경쟁률은 3921 대 1로 집계됐다. 올해 청약을 진행한 전체 공모주 중 경쟁률 기준으로 엔비티(236810)(4398 대 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주가가 크게 움직이는 스팩도 있다. 지난 3일 상장된 IBK스팩16호는 상장 당일 공모가(2000원)의 두 배인 4000원에 거래를 시작해 상한가인 5200원까지 주가가 올랐다가, 3370원에 장을 마쳤다.

금융투자업계는 스팩에 뭉칫돈이 몰리고 주가가 급등락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스팩이 중소기업의 자금조달과 상장기회를 늘려주기 위한 본연의 취지와는 달리 단기 투자 수익을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투자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주가가 이상 급등하는 현상을 보이는 스팩에 대해 주가 조작 세력이 있는지 기획 감시까지 하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수합병(M&A)이 되기 전까지는 껍데기 회사에 불과한 스팩 가격이 이유 없이 급등락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테마주 투자 등 투기성 수요가 스팩 투자로 넘어와 가격 변동성을 높이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과열되고 있는 스팩의 상장 문턱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이 30억원 이상이거나 시가총액이 200억원을 넘으면 된다. 자기자본 100억원 이상이면 유가증권 시장에도 상장할 수 있다.

이러한 국내 규정은 해외와 비교해봐도 턱없이 낮다. 최근 싱가포르 거래소는 스팩 상장의 규제를 완화해주기 위해 상장에 필요한 최소 시총을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이렇게 낮췄음에도 최소 시총 규모는 1억5000만 싱가포르 달러, 미 달러화로 환산하면 1억1200만달러다. 한화 1300억원 가량 되는 돈이다. 우리나라 코스닥 상장을 위한 시총 200억원과 비교하면 6.5배가 높다. 스팩의 본고장인 미국의 경우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상장을 위해 최소 1억2500만달러(약 1460억원)의 시총을 요구한다.

상장 문턱이 낮다 보니 상장 후 3년이라는 기한 내에 인수‧합병 대상 기업을 찾지 못해 상장 폐지되는 스팩도 많다. 어떤 분야의 기업을 인수‧합병할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 없이 상장했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해산하는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183개 스팩(유가증권시장 3개, 코스닥 180개)이 상장돼 있었지만, 현재는 66개(유가증권시장 1개, 코스닥 55개)만 남고 모두 상장 폐지됐다. 합병 성공률은 63.9%에 그쳤다. 스팩 10개가 상장되면 4개는 인수‧합병 기업을 찾지 못해 상장 폐지된다는 의미다. 올해도 1월부터 8월까지 스팩 4개가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스펙 상장은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자금 조달을 하고, 상장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도입됐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취지와는 달리 단기 투자를 통해 시세 차익을 바라는 투자자들이 많이 몰리는 시장이 됐다. 이제라도 좀 더 강화된 상장 규정을 적용해 스팩 제도의 취지는 살리되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상장을 위한 최소 요구 시총 기준을 올리는 것도 검토할 때다.

[정해용 증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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