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모태' 광주천 이야기] ⑨'도시의 시작' 광주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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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부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기와의 명문과 정도전(鄭道傳)의 한시 등에 따르면 1370~1380년대 어간에 축조됐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면적이 10만평인 광주읍성은 40여개의 전라도 읍성 중 나주읍성(30만평), 전주읍성(20만평), 장흥읍성(16만평)과 비교했을 때 남원읍성(20만평)과 함께 산에 의탁하지 않고 순전히 하천 범람원에 세운 전형적인 평지성(坪地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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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고려말엽 왜구침입 대비 축조, 하천 범람원에 세운 평지성
적의 기습때 신속한 피신 목적, 광주천 자체가 자연해자
[광주=뉴시스] 배상현 기자 = `도시 광주'는 광주천변의 옛 광주읍성 자리에서 시작됐다. 광주읍성은 고려말엽 왜구침입에 대비해 축조했다. 출토된 기와의 명문과 옛 문헌기록이 뒷받침해준다. 그 무렵 왜구침입에 대비해 현재의 충장로1~3가, 금남로1~3가에 이르는 곳에 석성(石城)을 쌓았다.
2000년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부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기와의 명문과 정도전(鄭道傳)의 한시 등에 따르면 1370~1380년대 어간에 축조됐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면적이 10만평인 광주읍성은 40여개의 전라도 읍성 중 나주읍성(30만평), 전주읍성(20만평), 장흥읍성(16만평)과 비교했을 때 남원읍성(20만평)과 함께 산에 의탁하지 않고 순전히 하천 범람원에 세운 전형적인 평지성(坪地城)이었다.
하천 범람의 위험이 도사린 광주천변에 굳이 읍성을 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읍성은 적의 기습 때 주민들을 신속하게 피신시킬 목적으로 쌓은 것이다. 그래서 험준한 산보다 평지를 성터로 삼았다. 물론 침수 위험이 있었으므로 성은 범람원에서 약간 두툼하게 올라온 자연제방을 골라 쌓았다. 또 범람원이라 땅을 파면 물을 긷기 편했고 주변에 너른 들을 끼고 있어 낮엔 농사를 짓고 밤엔 성안으로 들어와 마음 놓고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광주천 물을 끌어다가 성 밖의 인공 해자(도랑)를 채웠고 광주천 자체는 자연 해자로 사용할 수 있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praxi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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