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다툼에 흔들리는 반도체 빅딜.. 삼성 '3년내 M&A' 전략 빨간불

박진우 기자 2021. 9.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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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정부, 반도체 힘 쏠림 원치 않는 듯
반독점심사에서 M&A 무산되는 경우 발생
대형 M&A 3년 내 하겠다는 삼성도 쉽지 않아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내부. /SK하이닉스 제공

반도체 업계의 대규모 인수합병(M&A)에 각국 정부가 번번이 어깃장을 놓고 있다. 반도체 헤게모니(주도권) 싸움이 갈수록 격해져 힘이 한쪽으로 쏠리는 일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내 대규모 M&A를 계획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목표 달성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3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각국 정부의 반독점심사 기구들은 반도체 업계의 굵직한 M&A에 반대 혹은 그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반도체가 국가 안보 문제로 대두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강력한 시장 지배력이 특정 국가 혹은 기업에 쏠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각국의 의도로 풀이된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극심한 반도체 공급부족(쇼티지)은 공급망 확보 차원의 보호무역주의가 심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막대한 투자와 고용이 수반되는 반도체 산업을 자국 내 묶어두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공급망 재편을 논의한 것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당시 다수의 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밝혔다.

실제 당사자 간 계약이 끝났음에도 관계국 반독점심사 기구들이 반대해 M&A가 무산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와 일본 반도체 장비 기업 고쿠사이일렉트릭의 M&A도 그런 흐름에 있다.

미국 반도체 장비 회사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공장. /AMAT 제공

애초 두 회사의 M&A는 지난해 6월 마무리 됐어야 했지만 중국 반독점심사 기구가 결합 승인을 미루면서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AMAT는 이 과정에서 원래 책정했던 인수가 22억달러(약 2조5700억원)를 35억달러(약 4조1000원)로 인상하고, 계획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심사 기간 내 결론을 내리지 않았고, AMAT의 고쿠사이 인수 건은 최종 결렬됐다. 앞서 2015년에도 중국 정부는 AMAT의 또 다른 반도체 장비 회사 도쿄일렉트론 인수를 독과점 우려로 승인하지 않았다.

중국 반독점심사 기구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은 2018년 퀄컴의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 인수도 막았다. 당시 중국은 결합 승인 가부를 결정하지 않는 지연 전략을 펼쳤는데, 업계는 중국이 미국 회사인 퀄컴이 과도한 시장 지배력을 갖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 웨스턴디지털이 200억달러(약 23조4000억원)에 일본 메모리 반도체 기업 키옥시아를 M&A하려는 계획도 중국의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유럽연합(EU) 역시 반도체업계 M&A에 훼방을 놓고 있다. 자국 내 산업 이익을 위한 조치들이다. 영국의 반독점심사 기구인 경쟁시장국(CMA)은 최근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사 ARM 인수에 대해 독점 우려가 있어 심층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올해 초 엔비디아와 ARM에 M&A와 관련한 추가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각각 요청했다. 유럽연합의 반독점심사기구인 EU집행위원회 역시 이 M&A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중국계 사모펀드 와이즈로캐피털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을 만드는 매그나칩을 인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으나,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이 계약이 미국 안보에 영향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며 절차 진행을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지난 6월 내렸다. CFIUS는 최근 9월 중순 심사를 완료하겠다는 서한을 매그나칩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심사 결과가 어떨지는 미지수다. CFIUS는 이전에도 알리바바그룹의 머니그램 인터내셔널 인수, 칭화유니 자회사의 마이크론·웨스턴디지털 인수를 무산시킨 일이 있다.

이탈리아는 중국 심천투자홀딩스가 밀라노 소재 반도체 기업 LPE의 지분 70%를 사들이려던 것을 지난 3월 불허했다. 당시 이례적으로 정부 공식 입장이 나오기도 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중국 기업이 이탈리아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려는 사례가 있어 조사했고 최종적으로 거부권을 사용했다”라며 “(LPE의 기술이) 군사 분야에서 새롭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드라기 총리는 인수가 성사되면 최소 2개국 이상의 EU 회원국에 대한 보안이 약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NXP 프랑스 캉 공장. /NXP 제공

향후 3년 내 의미 있는 M&A를 진행하겠다고 한 삼성전자의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반도체 패권주의가 강해지는 가운데, 메모리 1위 삼성전자의 반도체 분야 지배력이 더 커지는 걸 아무도 원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설계 강화 등으로 2030년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글로벌 1위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추진하고 있는 M&A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반도체 쇼티지로 삼성전자 M&A 후보들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는 부분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가장 유력 대상자로 여겨졌던 NXP의 경우 현재 기업 가치가 8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퀄컴의 인수 시도 당시 50조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몸값이 상당히 뛴 것이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으면 최소 인수 금액은 100조원에 달한다는 전망이 있다.

반면 각국 심사를 끝내고 중국 심사만 남긴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모양새다. 인수하려는 인텔 낸드사업부의 여러 사업장 중에 중국 다롄사업장이 포함돼 있어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중국 측 심사에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안으로 각국 반독점심사를 끝내고 M&A를 최종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0억달러(약 10조5000억원)에 인텔 낸드사업부를 인수한다는 계약을 인텔 측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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