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융합 시스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4차 산업혁명 핵심과제인 AI(인공지능) 융합분야에 407억원을 지원하는 것을 필두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AI 실현 3대 전략 및 10대 실행과제를 지난 5월 수립·추진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필수 기술로서 AI를 집중육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분야별 융합의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간과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AI를 의학분야에 탑재해 가장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의과대학에서 의예과를 수료한 후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의학과 공학은 고등학교 과정에서 볼 때 같은 자연계지만 필자의 경험과 동문들의 활동을 지켜본 결과 두 분야의 학문적 분위기와 경제활동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의사들은 환자를 대면하고 서비스를 공급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구조인 반면 엔지니어들은 주로 컴퓨터와 일하며 재화를 창출하는 경제활동을 한다. 의학은 치료방법의 임상적 유효성 검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반면 공학은 근본적인 메커니즘 규명과 실제 시스템 구축에 집중한다.
당연하게도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차이는 더욱 크다. 자연과학은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수학과 물리학적 법칙을 근간으로 하는 반면 인문사회과학은 정답 없이 열띤 토론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아가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학문적 주제가 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융합이 기본 근간이 돼 상용화의 성공 여부를 가른다. 아마존과 페덱스는 기존 물류시스템에서 벗어나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무인배송 경쟁을 시작했다. 원격진료를 위한 모바일 스마트 헬스케어 시스템을 도입한 미국에서는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텔라닥헬스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4300만여명의 회원을 끌어모았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산업에서 융합이 이뤄지며 혁신 서비스가 나오지만 의학과 공학의 융합이 필요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아직 걸음마 수준으로 보인다. 의학과 공학, 각각의 분야에선 일부 선진국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답답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모바일 당뇨진단 플랫폼 사업의 경우 서비스 공급자는 의료인, 사용자는 일반 소비자다. 의사는 단순히 하나의 검사수치만으로 진단하지 않는다. 공복 혈당수치 외에도 유전적 히스토리, 기저질환, 나이, 체중의 변화, 진단검사 결과를 종합하고 끝으로 의사의 임상적 경험에 의한 판단으로 진단을 내린다. 매일 검사해야 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과 검사과정의 편리함이 중요하다. 모바일 진단기기 개발업체는 제품의 디자인, 혈당을 정확히 측정하는 기술, 차별성, 기술방어를 위한 특허에 집중한다.
이렇듯 의료인, 소비자, 제품개발자의 생각은 너무나 다른데 누구도 오류를 범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함정이다. 이들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융합해 새로운 시스템을 도출하는 것이 관건이다. 즉 의사들의 진단 원리와 특성을 이해하고 소비자의 니즈와 편리함을 제공하는 혁신적 진단기기 출시는 다 함께 융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이 사회에 미치는 변화와 그로 인한 수혜자와 피해자를 예측하고 통합하는 것이 기술개발보다 더 중요해졌다. 공급자와 사용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분야의 융합이 필수가 됐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우리는 분야별로 상당부분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성과를 이뤘다. 이런 결과물을 이제 잘 융합해야 한다. 자연과학, 공학, 인문학, 사회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한 시스템적 융합에 집중한다면 한국이 선두 국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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