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을 부리는 자본 옆에서, 졸렬한 타박이라도 하여야 했다

한겨레 2021. 9. 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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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100년, 김수영] (17) 여편네

아내 등을 얕잡는 호칭
'만용에게' 등 13편서 쓰여
반여성 지적 분명한데
굳이 시어로 등장시킨 건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던
모순적 물질주의 관계서
'점점 어린애'처럼 사느니
주눅만은 들 수 없다며
시인이 택한 전투태세

그것은 부부싸움이 아닌
자유 의지를 꺾게 하는
힘센 '악'을 향해 뱉는 욕
김수영 시 ‘만용에게’ 초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제약회사 봉투 뒷면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여성 호칭은 여편네, 아내, 여자, 처, 계집애 등 30여 가지에 이르는데, 그중에서 여편네가 가장 많다. ‘여편네의 방에 와서’ ‘만용에게’ ‘죄와 벌’ ‘반달’ ‘성’ 등 13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여자(12편), 아내(11편), 처(4편) 등이다. 여편네란 결혼한 여자를 얕잡아 이르거나, 자기 아내를 얕잡아 이르는 말인데, 김수영의 시에서는 후자를 가리킨다. 물론 아내를 부인이나 처로 부르는 작품들도 있다. 아내 이외의 여성에게는 여사나 여인 등으로 비교적 격식을 차린 호칭을 쓰고 있다. 이와 같은 면은 4·19혁명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아내와 함께 양계 일을 하는 등 일상에 관심을 두면서 나타난다. 1961년 6월부터 ‘신귀거래’란 부제가 붙은 연작시를 쓰면서 여성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여편네란 시어를 사용한 것이다.

김수영은 왜 13편의 시 작품에서 아내를 여편네라고 속되게 불렀을까? 실제로 아내를 얕잡아 본 것인가? 이 의문은 심각한 문제의식을 야기할 수 있다. 그동안 김수영은 자유를 억압하고 왜곡하는 대상에 맞서 자신의 시적 신념을 온몸으로 밀고 나간 시인으로 평가되어 왔다. 따라서 김수영이 사회의 약자인 여성을 비하했다면 그의 시 정신은 모순되거나 한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여편네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하는데, 우선 여편네를 시인의 아내로 한정 짓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작품에서 불린 여편네가 실제 시인의 아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인이 의도한 특별한 상징의 대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편네란 호칭을 반(反)여성주의를 드러낸 것으로 단정 짓기보다는 그 호칭으로써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를 읽어내야 한다.

“나는 점등(點燈)을 하고 새벽 모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만/ 여편네는 지금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니 430원짜리 한 가마니면 이틀은 먹을 터인데/ 어떻게 된 셈이냐고 오늘 아침에도 뇌까렸다// 이렇게 주기적인 수입 소동이 날 때만은/ 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 무능한 내가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다/ 너의 독기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이 보이고/ 너와 내가 반반―/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 보려무나!””(‘만용에게’ 부분)

김수영 시인의 집에서 양계 일을 거들었고 시 ‘만용에게’의 모델이 되기도 한 청년 만용(가운데)의 대학 졸업식 사진. 오른쪽이 김수영 시인이고 왼쪽이 부인 김현경 여사다. 김현경 제공

위의 작품에서 “여편네”는 430원짜리 닭 모이 한 가마니로 이틀을 먹일 경우 한 달의 사료비가 6450원이면 되는데, 실제로는 12만~13만환(1만2천~1만3천원. 1962년 화폐개혁으로 화폐단위가 ‘환’에서 ‘원’으로 바뀌었고 10 대 1로 평가절하되었다)이 들어가니 그 원인이 무엇이냐고 남편에게 따진다. 달걀이 하루에 60개밖에 생산이 안 되어 수지가 맞지 않는데다가 양계 일을 돕는 “만용이”의 학비까지 내야 하므로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여편네”는 사료비가 두 배로 들어가는 원인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만용이”의 실수나 소행을 의심한다. 그런 까닭에 남편에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고 나무란다. 이에 남편은 “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고 응수한다. 자신이 무능하지만 이럴 때만은 “너의 독기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다고 타박한다.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 보려무나!”라며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여편네”는 양계를 사업으로 간주해 수익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자본과 노동을 투입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이에 비해 남편은 “나는 양계를 통해서 노동의 엄숙함과 그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양계 변명’)라고 했듯이 양계업을 수입보다는 노동의 가치를 알게 해준 것으로 여긴다. “보석 같은 아내와 아들은/ 화롯불을 피워 가며 병아리를 기르고/ 짓이긴 파 냄새가 술 취한/ 내 이마에 신약(神藥)처럼 생긋하다”(‘초봄의 뜰 안에’)라고 한 데서도 그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남편이 양계 일을 하면서 수익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존재로서 체제가 요구하는 가치를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은 사실은 “나는 점등(點燈)을 하고 새벽 모이를 주자고 주장”한 데서 확인된다. 그렇지만 “여편네”는 “지금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남편의 제안을 단번에 무시한다.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편은 “여편네”의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그녀의 전문가적인 파악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여편네의 방에 와서―신귀거래 1’)가 되고 만다.

<현대문학> 1963년 10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죄와 벌’. 맹문재 제공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수영이 시 작품에서 사용한 여편네라는 호칭은 단순히 아내를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의도가 반영된 상징어로 볼 수 있다. 곧 “돈에 치를 떠는 여편네”(‘도적’)처럼 물질주의에 함몰된 존재에 대한 멸시와 경멸이 투영된 호칭인 것이다. 그리하여 물질주의적 잣대로 자신을 소외시키고 경쟁을 부추기는 여편네를 적으로 간주하고 맞선다.

김수영이 인식하는 적은 “애교도 있”고 “말하자면 우리들 곁에 있”(‘하… 그림자가 없다’)는 친밀한 존재이다. 여편네가 바로 그러한 속성을 지닌 캐릭터이다. 여편네는 남편에게 인생의 동반자로서 절대적인 관계에 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선택한 상대여서 언제든지 타인이 되거나 심지어 적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자본주의 체제에서 계약이나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와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자는 언제든지 밀려날 수 있다. 김수영은 이러한 생존 논리를 파악하고 자본가가 제시하는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투적으로 주체성을 벼리면서 여편네를 적으로 삼는 식으로 대결한다.

김수영은 이 싸움에서 자신이 승리한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여편네가 자본가라면 자신은 고용인이고, 여편네가 전문가라면 자신은 비전문가이고, 여편네가 프로라면 자신은 아마추어임을 체득하고 있다. 그렇지만 주눅 들지 않는다. 무능하더라도 인간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너도 어지간한 놈이다― 요놈―죽어라”(‘잔인의 초’)라고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김수영은 싸움의 의미가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 있다고 믿는다. 그의 시가 당대적이면서도 시대를 넘을 수 있는 힘은 그 누구보다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소시민성을 부단히 반성하면서 대항한 데 있다.

<현대문학> 1964년 4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반달’. 맹문재 제공

김수영의 시 작품에서 남편이 아내를 여편네로 부르며 보인 행동은 부부싸움의 성격을 넘어선다. “시에서 욕을 하는 것이 정말 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문학의 악의 언턱거리로 여편네를 이용한다는 것은 좀 졸렬한 것 같은 감이 없지 않다”(‘시작 노트 4’)라며 자신이 여편네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을 반성하고 있지만, 아내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실제로 그의 부인인 김현경은 남편이 자신을 여편네로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증언했다.)

물론 여성주의 관점에서는 여편네라는 호칭 자체가 반여성주의 혐의를 가진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아내를 비하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잠재적으로 상대를 낮잡아 대한 것으로, 남성 우월주의 사고가 몸에 밴 결과라고 매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김수영의 시 작품에 쓰인 여편네를 아내를 비하한 의미로만 한정하는 시각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보다는 물질주의에 함몰된 전형적인 인물을 겨냥한 의도로 이해하는 것이 김수영의 시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온당한 길이지 않을까. 김수영은 힘센 ‘여편네’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대결했다. 결국 자신이 추구한 자유정신을 온몸으로 밀고 나간 것이다.

맹문재 교수.

맹문재 안양대 교수, 시인

만용에게

수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다
모이 한 가마니에 430원이니
한 달에 12, 3만 환이 소리 없이 들어가고
알은 하루 60개밖에 안 나오니
묵은 닭까지 합한 닭모이값이
일주일에 6일을 먹고
사람은 하루를 먹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은 봄에 알을 많이 받을 것이니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봄에는 알값이 떨어진다
여편네의 계산에 의하면 7할을 낳아도
만용이(닭 시중하는 놈)의 학비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한다

나는 점등(點燈)을 하고 새벽 모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만
여편네는 지금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니 430원짜리 한 가마니면 이틀은 먹을 터인데
어떻게 된 셈이냐고 오늘 아침에도 뇌까렸다

이렇게 주기적인 수입 소동이 날 때만은
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

무능한 내가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다
너의 독기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이 보이고
너와 내가 반반―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 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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