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원장까지 등장, 또 재연되는 대선 막장극

조선일보 2021. 9. 13.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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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전체회의에 참석한 박지원 의원이 동료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은 고발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 당시 국민의당 비대위원./뉴시스

야권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언론을 통해 제기한 조성은씨가 해당 보도 3주 전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야당은 이를 두고 즉각 ‘박지원 게이트’라고 명명했고,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의심된다”며 공세에 나섰다. 박 원장에 대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도 했다. 박 원장과 조씨는 ‘평소 알고 있는 사이’라면서도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대화는 한 적 없다고 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 국정원장의 개입을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내외 각종 기밀 정보가 취합되는 정점이고 그래서 강력한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국정원장이 대선 정국에서 야권 유력 대선 주자에게 불리한 의혹을 제기하려던 제보자를 호텔 식당에서 단둘이 만난 것만으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공개적으로는 “야당의 황당한 물타기”라고 하는 여당 내부에서도 “미묘한 시점에 국정원장과 제보자가 만났으니 의혹의 방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일 보수 정권 아래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면 지금의 집권 세력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 문제가 되고 있는 ‘고발 사주’에 대한 대화가 전혀 없었다는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국정원장의 처신에는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제보자는 국정원장 초대를 받아 공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주변에 알렸다고 하고, 국정원장을 만난 곳이라며 호텔 최고급 식당 사진 등을 스스로 공개했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대한민국 국정원장이라는 자리가 이런 사적 관계에 시간과 신경을 할애해도 좋을 정도로 한가한 자리인가라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고발 사주 의혹 자체에도 수상하고 납득이 안 되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의혹은 윤 전 총장이 작년 4월 총선 직전 부하인 손준성 검사를 통해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을 야당에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손 검사로부터 야당에 전달됐다는 고발장엔 약 석 달 뒤인 6월 말 알려진 일이 기재돼 있고 전반부는 평어체, 후반부는 경어체로 기술돼 있는 등 앞뒤가 안 맞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조성은씨도 처음엔 자신이 제보자가 아니라고 하다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면서 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검찰은 의혹 보도 직후 전광석화처럼 진상 조사에 들어갔고, 공수처도 친여 성향 시민단체가 고발장을 제출한 지 사흘 만에 윤 전 총장을 4개 혐의 피의자로 입건하고 야당 의원실을 압수 수색했다. 공수처는 수사 착수 이유에 대해 “언론이 빨리하라고 해서 압수 수색을 한다” “죄가 있냐 없냐는 다음 문제”라는 상식 밖의 설명을 내놓고 있다.

이런 마당에 현직 국정원장은 수사의 시발점인 제보자를 비공개로 만났다고 하니 정황도 불분명한 야권 유력 후보 관련 의혹에 온 나라의 권력기관이 전부 등장한 꼴이 됐다. 제보자 조씨에 대해선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과거 행적 등을 두고 온갖 추측과 음모론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에 여야 간 정책과 비전 경쟁은 실종됐고 권력 쟁취를 위해 모두가 뒤엉키는 ‘3류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상황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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