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재난지원금 계급론

강경희 논설위원 2021. 9. 1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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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부모 재력에 따라 자신의 처지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라고 분류한 수저계급론이 몇 년 전 청년들 사이에 유행했다. 소득 하위 88%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주는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이번엔 ‘재난지원금 계급표’까지 온라인에 등장했다.

▶지원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5계급으로 나눠 신라 골품제에 빗댔다. 시세 20억원 넘는 집(재산세 과세표준 9억원)이 있고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며 연봉도 높아 건강보험료 기준을 초과하는 상위 3%는 성골, 금융소득과 건강보험료 기준을 넘는 상위 7%는 진골, 월 소득 1000만원 넘는 맞벌이 부부 등 건강보험료 기준을 초과한 상위 12%는 6두품이라 칭했다. 재난지원금을 받는 88%는 평민, 그중에서도 10만원 더 받는 소득 하위층은 노비로 비하하기까지 한다.

▶인터넷에는 탈락자 인증 랠리도 벌어진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상위 12%에 든다니 우리나라가 이렇게 못사는 나라였나요?” “6월 말까지 회사 다니다 7월부터 백수인데 6월 건보료 기준으로 탈락했습니다. 수입도 없는 내가 상위 12%라니” “나는 지급 대상자인데 남자친구는 아니라네요. 상위 12%에 속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못 받으면 불만, 받으면 신세 타령이다. “재난지원금 받는 나는 평민 아니면 노비 신세”냐 자조하고, 못 받은 사람은 “세금 걷어갈 때는 국민, 지원금 줄 때는 외국인 취급이냐” 불만이다. 건보료 기준선에 걸려 아슬아슬하게 탈락한 사람은 더더욱 불만이다.

▶당초 80% 지급을 확정하면서 지난 7월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원금을 안 받는 분들에게는 사회적 기여를 한다는 자부심을 돌려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빈축을 샀다.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로 자부심 사양하고 돈 받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지원금 탈락 이의신청만 나흘간 5만4000건이다.

▶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다고 가정했을 때 정확히 가운데 가구 소득을 중위소득이라 한다. 정부의 복지는 이 중위 소득을 기준으로 차등 지원된다. 코로나를 틈타 작년에 전 국민 현금 뿌리기를 한 것을 계기로 이상한 기준들이 등장했다. 올해 또 나랏빚 내 전 국민 지급하자니 명분이 안 서는지 ‘80% 지급 방침’이 정해졌다. 그게 88%로 바뀌었다 불만이 높으니 다시 90%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현금은 뿌려야겠고 골대를 이리저리 움직여서라도 우리 편 유리한 득점은 해야 하겠으니 이리 이상한 국정이 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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