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청년 노동자가 만든 ‘무노조 車’를 응원합니다

박은호 사회정책부장 2021. 9. 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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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줄인 대신 청년 일자리 늘린 GGM, 이번 주 첫 완성차 출시
성능 좋아 소비자 선택 받으면 업계 ‘귀족 노조’ 바뀌는 계기될 것

노동계 사정에 밝은 분이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오면서 “‘광주형 일자리’ 공장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그가 말한 공장은 광주광역시 빛그린산단에 위치한 광주글로벌모터스(GGM)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 등이 투자해 이태 전 법인을 설립하고 작년엔 60만㎡ 부지에 완성차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그런 GGM의 신차가 곧 출시되는데 언론에서 주목해달라고 알려온 것이다.

전국 최초의 노사민정 상생형 일자리 기업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지난 7월 27일 빛그린국가산업단지 현지 공장에서 '성공적 양산 D-50 합동 점검 및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기념 촬영하는 임직원. 2021.7.27 /광주글로벌모터스

GGM은 여러모로 특이한 회사다. 완성차 업체 하면 으레 민노총 노조가 연상되지만 이 회사엔 노조가 없다. 강성 노조가 밥 먹듯 파업 으름장을 놓는 일이 없으니 사측도 어용 노조를 만들 생각조차 않는다. GGM 관계자는 “노조가 없는 대신 일반 사원과 경영자 동수로 만든 ‘상생협의회’에서 근로 조건 등을 대화로 푼다”고 했다.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 등 민노총이 장악한 여느 완성차 공장에선 꿈도 못 꿀 풍경이다. 회사가 죽든 말든 노조 권익부터 챙겨온 민노총과 달리 GGM 노사는 ‘상생하자’고 말한다. ‘회사가 살아야 직원도 산다’는 믿음 때문이다.

완성차의 대표격인 현대차 생산직 노조원은 평균 연령이 50대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간 파업을 무기 삼아 임금 투쟁을 벌인 끝에 이제는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나든다. 대한민국 봉급 근로자의 상위 10%에 진입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생산성은 글로벌 경쟁업체보다 훨씬 낮다. 노조 허락 없이는 국내든 국외든 공장을 증설할 수 없고 생산 물량을 늘리지도 못한다. 채산성이 떨어지자 회사는 생산직 신규 채용 중단으로 대응하고, ‘귀족 노조’는 더더욱 임금 투쟁에 매달린다. 이런 악순환 쳇바퀴는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GGM은 젊은 회사다. 특히 생산직 380명은 대부분 20~30대다. 50명만 경력으로 뽑고 나머지는 모두 고졸, 전문대 졸업자 그리고 취업준비생을 신규 채용했다. 이 회사엔 호봉제, 수당 제도가 없다. 전 직원에게 ‘시급(時給)’ 임금이 적용돼 일한 만큼 정확하게 월급을 받는다. “주 52시간을 꽉 채워 근무할 경우 평균 연봉은 3500만원 안팎 수준”이라고 한다. GGM은 ‘광주형 일자리’ 모델로 불린다. ‘임금은 줄이되 일자리는 늘리는’ 방식이다. 취업에 목마른 청년들은 특별한 자동차 기술이 없어도 GGM에 입사해 수개월 직무 교육을 받아 완성차를 거뜬히 만들어낸다. 자동차 뼈대를 만드는 차체 공정, 페인트 칠하는 도장 공정, 부품 조립해 차를 완성하는 의장 공정에 골고루 배치돼 노동한 끝에 어느덧 첫 완성차를 내놓기에 이른 것이다.

현대차, 기아차 노조는 2년 전 ‘광주형 일자리’ 논의가 시작되자 자신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데도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현대차 신입 연봉의 절반, 노조원 평균 연봉의 3분의 1을 받는 GGM 차가 나오면 생산성이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귀족 노조’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컸을 것이다. 임금은 낮추고 청년 일자리는 늘린 GGM을 향해 민노총이 “태어나선 안 될 회사”라고 한 적도 있다.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판에 대한 조바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GGM 신차는 1000cc급 경형 SUV다. 가격은 1000만원대 초중반대로 전망된다. 14일부터 사전 예약이 시작돼 이달 말쯤 도로에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일단은 가격 대비 차 성능이 좋아야 한다. GGM이 내놓을 차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대차, 기아차에는 뒤지지 않기를 바란다. 낮은 임금을 받아들이고 일자리를 얻은 청년 노동자들이 뿌듯해할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수십년 이어온 국내 완성차 공장의 고비용·저효율 구조, 낮은 생산성, 전투적 노사 관계에도 작지 않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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