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휴대폰 속 사진이 위험하다

2021. 9.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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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너무 놀라 휴대폰을 얼굴에 떨어뜨릴 뻔했다. 10여년 전 마지막으로 만난 동창생이 가슴만 겨우 가린 까만 상의에 짧은 치마를 입고 최근 유행하는 ‘제로투댄스’를 추고 있었다. 이 춤은 예술성보단 성적(性的) 어필의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에로틱한 춤인데, 골반을 시계추가 좌우로 이동하듯 반복적으로 튕기며 흔드는 것이다.

최근 젊은층에 유행하는 중국 어플리케이션 '페이스플레이(faceplay)'. 얼굴 사진을 올리면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수백개의 기존 동영상에 자연스럽게 얼굴을 합성해 준다./페이스플레이

‘이 친구 얌전한 모범생이었는데 이런 옷에 이런 춤이라니. 역시 사람 인생은 알 수 없어…’ 하고 들여다보다 발견한 문구. “요즘 핫하다는 #딥페이크 어플. 트렌드 따라가기 힘들다. 진짜 나인 줄 알았지.” 범죄에나 쓰인다는 ‘딥페이크’란 단어를 이런 곳에서 볼 줄 몰랐다.

며칠 뒤엔 이런 게시물도 봤다. 보랏빛 전통의상을 입은 몽골 유목민 남성이 백마를 타고 달렸다. 화면이 순간 느려지더니, 그가 두 다리로 버티며 말 위에서 활을 쐈다. 분명 어디서 본 얼굴이었다. 영상 아래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무 재밌어서 우리 엄마, 아빠, 동생 얼굴을 다 넣어봤다. 아빠 미안~!”

최근 젊은층 사이 유행하는 우크라이나 어플 '리페이스'. 걸그룹 등 각종 영상에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본인 사진을 합성할 수 있도록 했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와 '제니'의 사진과 영상에 본인 얼굴을 합성할 수 있다./리페이스

최근 한 달 가까이 인스타그램·틱톡 등에서 유행하는 중국·우크라이나산 ‘딥페이크(Deepfake)’ 어플의 결과물이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AI) 기술로 사람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영상물에 합성하는 기술이다. 최근 이 어플로 소셜미디어에 장난삼아 만든 게시물 수십만 개가 올라올 정도로 인기다.

어떤 어플인지 궁금해 내려받아 실행해 봤다. 나는 이곳에서 1분 만에 어느 저택의 고급 파티에 참석한 셀러브리티가 되기도, 교복 입은 아련한 첫사랑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영화 ‘원초적 본능’의 가장 유명한 장면에 내 얼굴을 합성할 수도 있다.

놀라움과 동시에 두려워졌다. 만일 이 영상이 어느 흉악한 범죄에 휘말린 CCTV 영상이라면? 누군가 나를 음해하기 위해 거짓 영상을 만들어 올린다면? 혹은 포르노라면? 지난해 ‘N번방’ 사태 땐 텔레그램 비밀방 이용자들이 피해 여성의 얼굴로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 능욕하고 퍼뜨렸다.

이제는 뉴스에나 나오는 일이 아니다. 최근 교육부가 딥페이크 기술로 교사 얼굴을 야한 영상에 합성해 배포한 사례 등을 확인하고, 초상권 침해를 ‘교육 활동 침해 행위’로 규정해 입법 예고했다. 스마트폰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만 있으면 유치원생도 가능한 이 ‘딥페이크’를 어쩔 것인가.

과학의 발전은 원래 양면적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그리운 이의 얼굴과 목소리를 되돌리고, 가상 인플루언서를 만들어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딥페이크 영상의 피해자로 고통받고 관련 법을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누군가는 이런 어플을 만들어 돈을 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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