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내 손끝의 마법

강우근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2021. 9.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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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나는 마법학교에 입성했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이라는 마법을 마음껏 배우고 펼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설렘과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소설과 시 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문장에 집착한 시는 난해하게만 보였고, 사건을 위해 끼워 넣은 소설 속 인물의 행동은 설득력이 없었다. 학기말이면 나는 교수님과 상담하면서 고민을 늘어놓았다. 교수님은 다양한 분야의 책이 가득 메워진 책장에서 한 권씩 꺼내서 내게 처방전처럼 내밀었다. 보르헤스, 유디트 헤르만, 로베르토 볼라뇨…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봤지만 과제가 많다는 핑계로 미처 읽지 않았던 작가의 책이었다. 교수님의 책상에는 방금 전까지 보았던 책이 놓여 있었다. 내가 제대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에 민망해졌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이후로 나는 도서관에 오랜 시간 앉아서 책을 읽고 내가 썼던 문장을 고쳤다. 도서관에 나와 산책을 하는 낮에는 한 장면을 위해서 여러 번 촬영하는 영화과를 멀찍이서 구경하기도 했고, 새벽에는 연습실 너머에서 완벽한 음을 내기 위해 한 구간을 반복 연주하는 실용음악과의 음악을 들었다. 그들은 영화와 공연을 볼 관객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부터 마법은 단번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작품을 읽을 독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나는 전보다 글을 첨예하게 고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써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법은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에게도 해당할 것이다. 도장장이는 여러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도장을 파며, 일식집 요리사는 초밥을 맛볼 손님을 두고 식감에 알맞은 크기로 회를 잘라낸다. 제빵사는 빵을 바삭바삭하게 구울 수 있는 온도를 고민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의자, 냉장고, 외투, 베개 … 어느 물건 하나도 내게 쉽게 도착한 것이 없다. 각자의 물건에는 그 물건을 사용하게 될 사람을 떠올린 상상력이라는 마법이 있었다. 고민 끝에 남겨진 문장들로 이루어진 나의 시도 세상을 이루는 작은 마법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손끝에서 독자의 손끝으로 시가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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