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왕양 후계설의 정치 시그널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2021. 9.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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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총리 후임으로 '1963년생' 후춘화 대신 '노장' 왕양으로 합의했다는 의미
시 주석 3연임 더 굳어진 듯

8월 하순 중화권 일부 언론이 왕양(汪洋·66)이라는 인물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왕양은 공산당 서열 4위의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중국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을 맡고 있는 인물이죠.

◇베이다이허에서 불거진 왕양 후계설

매년 여름이면 중국 전·현직 최고 지도부는 보하이 만의 휴양지인 베이다이허(北戴河)에 모여 비공개회의를 갖습니다. 휴가를 겸해 정국 현안을 논의하죠. 올해는 내년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임기 5년의 다음 최고 지도부 인사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을 겁니다.

베이다이허회의가 끝나면 보통 당 고위인사를 통해 대만·홍콩 언론에 회의 결과가 전해지는데, 올해는 왕양 승계설이 흘러나온 거죠.

랴오닝성 보하이만 해안에 있는 휴양지 베이다이허. /QUNAR.COM, 조선일보DB

◇위상 달라지긴 했지만...

실제 이 회의 이후 왕양은 위상이 달라진 흔적이 보였습니다. 왕 주석은 8월17일 시진핑 주석이 주재한 중앙 재경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는데, 관영 매체는 왕 주석의 이름을 시 주석, 리커창 총리 다음으로 호명했습니다. 원래 정협 주석은 중앙 재경위 멤버가 아니어서 서열은 낮지만 정식 위원인 왕후닝 상무위원, 한정 부총리 다음으로 호명해왔죠. 순서가 달라졌다는 건 왕 주석이 중앙 재경위 위원이 됐음을 의미합니다.

8월19일에는 당 중앙 대표로 라싸에서 열린 티베트 평화해방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죠. 티베트에서 열리는 이 기념식에는 과거 예비 최고권력자가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8월19일 티베트 라싸에서 열린 티베트 평화해방 70주년 기념식에서 왕양 정협 주석이 연설하고 있다. /신화통신

하지만, 오랫동안 중국 정치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 측이 흘린 메시지를 중화권 언론이 과도하게 해석한 것으로 봐요.

왕 주석은 1955년생으로 1953년생인 시 주석보다 불과 2살 아래입니다. 내년 당 대회 시점 나이가 67세이니 칠상팔하(七上八下·67세까지는 남고 68세 이상은 은퇴한다) 원칙에 따라 상무위원으로는 남겠지만, 시 주석 다음 10년을 이끌기에는 너무 고령이죠.

왕양은 합리적인 개혁파로 능력이 검증된 인사이지만, 최고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정치적 파워를 가진 인물도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그가 리커창 총리의 후임이 될 것으로 예상해요. 리 총리는 왕 주석과 동갑이지만 이미 총리직을 10년이나 했습니다. 중국 총리는 상무위원 7명 중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자리죠. 대내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전쟁 중에 장수 안 바꾼다’

사실 리 총리의 후임으로는 1963년생인 후춘화 부총리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았죠. 하지만, 후 부총리가 상무위원으로 승진해 총리가 되면 외부에 그가 시 주석 후계자라는 신호를 주게 될 겁니다. 게다가 그는 리 총리와 같은 공청단파에 속한 인물이죠. 당연히 시 주석의 태자당 쪽에서 반대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같은 공청단파인 왕양이 차기 총리를 맡기로 합의를 했을 것으로 보여요. 어떻든 서열 2위의 총리 자리는 공청단파가 가져가는 것으로 계파 간 타협이 이뤄진 셈입니다.

시진핑 주석 후계그룹의 일원인 후춘화 중국 부총리. /연합뉴스

젊은 후춘화 대신 노장 왕양이 총리직을 승계한다는 건 시 주석의 3기(15년) 연임 이 굳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리커창 총리와 같은 나이의 왕양과 짝을 이뤄 다음 5년도 계속 집권하겠다는 겁니다. 개혁파인 왕양이 시 주석의 강경 이미지를 중화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겠죠.

중국은 지금 대만 통일 등 여러 문제를 놓고 미국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시 주석 측은 ‘전쟁 중에 장수를 바꿀 수 없다’는 논리로 연임을 밀어붙이는데, 그에 대해 뚜렷한 반대 목소리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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