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의 강화일기] 이미지를 마신다

한겨레 2021. 9. 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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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의 강화일기]

김금숙 ㅣ 그래픽노블 작가

금풍 양조장 입구다. 개다. 금빛이다. 어려 보인다. 암컷이다. 빨간 가슴 줄을 했다. 금풍이다. 짖지도 않는다. 내게 달라붙는 것이 수상하다. 신발 냄새를 맡는다. 꼬리를 흔든다. 당근이, 감자, 쵸코 냄새가 마음에 드나 보다.

책방, ‘국자와 주걱’의 김현숙 언니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와 남편인 로익도 그 뒤를 따랐다. 밖에서 떠들썩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고 젊은 남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양태석입니다.” 점잖으면서도 밝은 목소리다. 눈빛이 선하다. 현숙 언니가 양조장의 대표라고 했다. 그가 막걸리 시음 잔을 가져왔다. 책방 점장 언니의 잔은 투명한 하트 모양이다. 나는 은으로 된 작은 잔이다. 로익은 사기잔이다. 낮술은 오랜만이다. 술이 혀끝에 닿는다. 심봉사가 마셨으면 눈을 뜨겠다. 술을 즐기는 남편이 다른 막걸리보다 안 달다고 좋아했다.

금풍 양조장은 1926년에 지어졌다. 1932년에 등기가 나고 1969년에 그의 할아버지가 양조장을 인수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양조장 안에 있는 우물물로 술을 빚었다. 양 대표가 십대까지 사용했단다. 이후에는 그 옆에 더 깊이 지하수를 파서 사용한다. 우물을 보았다. 깊다. 무섭다. 억울하게 빠져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내 다리 내놔” 하고 발목을 덥석 잡을 것 같다. 어렸을 때 ‘전설의 고향’을 열심히 본 탓이다. 우물은 현재, 문화재로 신청해놓았단다.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흥미롭다. 쌀은 스팀으로 찐다. 이를 지하수에 담가놓고 누룩과 효모, 물을 넣는다. 누룩은 물에 3~4시간 담가놓은 뒤 액만 걸러서 사용한다. 술이 나오기까지 15일 정도 걸린다. 3개월간 숙성시킨 원액은 14도, 물을 탄 막걸리는 6.9도다. 감미료는 사용하지 않고 탄산은 뺐다. 파우치로도 술이 나오기 때문이다. 와인처럼 해외 수출용이나 여행용으로 만들면 선물하기에 좋을 것이다.

양조장은 누룩 빚던 공간, 누룩 판이 있던 공간, 술항아리가 있던 발효실, 현재 양 대표의 아버지가 사무실로 쓰는 공간 등으로 나뉘어 있다. 아버지의 사무실은 예전에는 약주실이었다고 한다. 공간들을 보여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2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을 밟을 때마다 세월의 소리가 났다. 계단의 끝에 아기를 품은 엄마의 방 같은 공간이 나왔다. 넓지만 아늑하고 비었지만 꽉 찼다. 지난날 이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손길을 마룻바닥과 벽은 기억하리라. 쾨쾨한 2층 나무 냄새가 그리움을 부른다. 로익의 할머니 집도 200년 되었다. 언젠가 어느 여름날, 호기심에 광에 올라갔다. 나무로 된 벽과 바닥은 할머니 이빨처럼 금이 가고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사이로 햇살이 쏟아졌다. 먼지 알갱이들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민들레 홀씨(갓털)처럼 춤을 추었다. 할머니의 광은 다른 세계로 가는 문 같았다.

양조장 2층에는 양 대표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사용했던 누룩 판이 그대로 있다. 키 크고 몸 좋은 남자가 들어가고도 남을 항아리들이 ‘나 봐라’ 하고 배를 내밀었다. 당시에는 50여개 정도 있었단다. 저 술항아리로 술을 빚었단다. 그도 항아리를 이용해 술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는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나의 엄마는 어렸을 때 피죽도 없어서 못 먹을 만큼 가난했다. 오죽 가난했으면 피로 죽을 만들어 먹었을까 싶었다. 그 피가 사람 피인지 동물의 피인지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커서 알았다. 피죽에서 ‘피’란 논에 나는 잡풀인 ‘피’의 열매이다.

구석에서 금풍 양조장의 라벨 종이를 발견했다. 한자로 내 이름과 같은 ‘금’이다. 반갑다. 초록색의 한자는 오래된 만화책 표지를 연상케 했다. 1930년대 라벨이란다. 양조장에 관련된 모든 한자는 서예를 배운 어머니가 썼단다. 파킨슨을 앓고 있는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었다. 간판을 쓰고 또 썼다. 그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금풍 양조장’이라고 쓰인 화선지 더미가 가득했다. 그 모습에서 내 어머니를 보았다. 코끝이 맵고 찡해졌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술은 맛이 좋아야 한다. 당연하다. 그가 하나를 더 추가했다. 술은 이미지란다. 술의 서사가 중요하단다. 2층은 술을 마시며 전시, 공연 등을 하는 공간을 꿈꾼단다. 금풍이도 좋은지 꼬리를 흔든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다. 온수리 맞은편, 작은 산의 반이 잘려나갔다. 곧 건물들이 들어서리라. 괜찮다. 온수리에 새바람이 부니까. 오래된 가치를 존중하며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문화 공간, ‘금풍 양조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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