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피닉스제도, 진짜 '피닉스'는 산호초
[경향신문]
지구온난화, 데워지는 바닷물
산호초 ‘백화현상’ 겪고 죽는데
태평양 중부 보호구역에서는
열에 내성 지닌 산호초 확산
2002년 첫 고수온 땐 76% 폐사
2015년엔 40%로 손실률 줄어
등에 산소통을 짊어지고 잠수복을 입은 한 다이버가 파란 바닷물로 풍덩 뛰어든다. 바닷속을 향해 거침없이 팔을 휘젓는가 싶더니 단 몇 초 만에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얕은 수심을 뚫고 전달된 반짝이는 햇빛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산호초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등 빛깔도 다양한 산호초 사이에선 수많은 열대어가 한가롭게 헤엄친다. 이곳은 호주 해안을 따라 2300㎞ 길이로 펼쳐진 세계 최대의 산호초 구역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수중 풍경은 최근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호주연구협의회(ARC)의 산호초연구센터가 지난해 영국왕립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1995년부터 2017년까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있는 산호초 절반이 사라졌다. 백화현상, 즉 산호초에서 색을 띤 조류가 이탈하며 하얗게 변하는 상태가 지속되다 결국 산호초가 죽는 일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것이다.
원인은 바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오르고 있는 바다의 수온이었다. 과학계는 지구 온도가 19세기 말 산업화 시대보다 1.5도 오르면 전 세계 산호초가 최대 90% 사라진다고 본다. 이미 지구 온도는 1.2도 올랐다. 이대로라면 수십년 뒤에는 살아있는 산호초를 동영상에서만 구경할 수 있다.
■ ‘맷집’ 좋은 산호초 발견
그런데 최근 과학계에서 더운 바닷물이 몰고 온 재앙에서 산호초를 구할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나타났다.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와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소속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 연구진은 지난달 말 국제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회보’를 통해 태평양 특정 수역의 산호초는 더운 바닷물을 만나는 일이 반복될수록 열에 견디는 힘이 커진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권투선수가 펀치를 자주 맞으면 맷집이 좋아지듯 이 구역 산호초도 더운 바닷물에 자꾸 접촉하면서 일종의 내열성이 생긴 것이다.
연구진이 분석한 바다는 태평양 중부의 ‘피닉스 제도 보호구역’이다. 크고 작은 섬과 바다로 이뤄진 이곳의 면적은 40만㎢로 남한의 4배다. 총 200종의 산호가 사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된 곳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피닉스 제도 보호구역에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수개월간 고수온 현상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더운 바닷물이 산호초를 덮칠 때마다 산호초가 망가진 수준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폈다. 시기별 수온은 평년보다 약 2~3도 올랐다.
분석 결과는 흥미로웠다. 2002년 처음으로 고수온 현상이 닥쳤을 때는 산호초가 76%나 사라지며 전멸에 가까운 피해가 나타났다. 두 번째 고수온은 2009년에 발생했는데, 이때는 68%의 산호초가 해를 입었다. 그러다 2015년 고수온 현상이 생겼을 때는 폐사율이 40%로 감소했다. 10년 남짓한 기간 만에 산호초의 손실 수준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 비결은 ‘강한 산호의 재생산’
산호초가 방어력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연구진은 더운 바닷물에서 어렵게 생존한 소수의 산호가 단지 살아남은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가설을 세웠다. 내열성을 지닌 산호가 생태계 재생을 주도하면서 고수온에 잘 견디는 산호들이 시간이 갈수록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모든 바다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피닉스 제도 보호구역의 어떤 산호가 이런 힘을 지녔는지, 생물학적 구조는 어떤지를 규명하는 것이 다음 연구 과제로 떠올랐다. 앞서 2019년 미국 하와이에서 열에 유독 강한 산호가 발견됐고, 같은 해 호주에선 유전공학을 이용해 더운 바닷물에서도 잘 버티는 산호가 개발됐다. 우즈홀해양연구소와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의 이번 분석 결과는 열에 잘 견디는 산호를 확산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를 추가한 셈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역시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데 있다. 산호초가 파괴되는 속도와 범위를 감안하면 바닷물 온도가 가파르게 오르는 일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어느 산호가 열에 잘 버티는지를 규명해 생태계 방어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온난화 추세를 역전시키는 것이 산호초가 살아남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00m 앞 응급실 퇴짜’ 심정지 대학생 결국 숨져
- ‘의료대란’에 70대도 돌아섰다···윤 대통령 지지율 20% 취임 후 ‘최저’
- [종합] 안세하 ‘학폭 의혹’에…1년 후배 주우재도 소환 “너도 알잖아”
- “무시해” 뉴진스 하니가 고발한 따돌림, ‘직장 내 괴롭힘’ 해당될까?
- [구혜영의 이면]김건희라는 비극 2
- 소송 져서 19조원 돈방석 앉게 된 아일랜드 ‘난감하네’
- 우주비행사 눈에 ‘특수 콘택트 렌즈’…폴라리스 던에 이런 임무도
- 문다혜 “인격 말살에 익숙해지고 무감해지는 사람은 없다”···검찰수사 비판
- 손흥민에 ‘인종차별 발언’ 동료 벤탄쿠르, 최대 12경기 출전 정지 징계 위기
- 김건희, 마포대교 순찰···“경청, 조치, 개선” 통치자 같은 언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