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중동·끝없는 테러..미 '포스트 9·11 종언' 아직 이르다

김윤나영 기자 2021. 9. 1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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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후 달라진 세계, 그리고 미국의 향후 대외정책

[경향신문]

테러와의 전쟁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경쟁·기후변화 등
새로운 위협에 대응 선언
시점 등 ‘정세 오판’엔 비판
테러 세력 득세도 부담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모두 철수시키며 2001년 9·11테러로 시작된 20년 전쟁의 종료를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다른 나라들을 재건하려는 대규모 군사작전 시대의 종료”를 알리고,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임무는 “2001년의 위협이 아닌 2021년과 내일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경쟁, 러시아의 도전, 사이버 공격과 핵 확산 등의 위협 속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이 9·11테러 이후 20년간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 시대를 끝내고, 미국 대외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9·11테러 이후 달라진 미국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카에다가 납치한 민간 여객기가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 한복판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무너뜨렸다. 미국 국방부 청사 펜타곤까지 공격받았다. 최악의 공격으로 2977명이 사망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9월20일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10월에는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는 탈레반을 몰아내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9·11사태는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미국의 최대 적대세력이 구소련에서 이슬람 무장단체로 바뀌었다. 테러 며칠 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미국인의 77%가 미군 희생이 따르더라도 테러리스트 응징을 위한 군사적 대응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대중의 지지에 힘입어 대외정책도 재편됐다. 네오콘들이 정부를 장악했고 테러와의 전쟁은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2001년 이후 미국 정가에서 ‘1% 독트린’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적극적 개입주의를 택했다. 1%의 잠재적인 위험만으로도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논리다. 베트남전쟁 패배 이후 줄여가던 국방예산을 다시 늘리고 군수산업이 번창했다. 2001년 국내총생산(GDP)의 2.9%였던 국방예산은 2010년 4.7%로 늘어났다.

미국은 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감시국가의 길을 갔다. 공항 감시와 이민 단속을 강화했고, 중앙정보국(CIA)에 임의체포 권한을 부여했으며, 테러 용의자들을 관타나모 수용소에 재판도 없이 구금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광범위한 정부부처 조정을 통해 테러로부터 미국 영토를 보호할 국토안보부도 창설했다.

미국은 9·11 이후 군사정책의 주요 무대를 중동으로 옮겼다. 테러와의 전쟁뿐 아니라 주요 석유 생산지인 중동의 전략적 중요성도 크게 작용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신년 연설에서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2003년 3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를 숨겼다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나오지 않았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진짜 이유는 후세인 정부가 석유 거래화폐를 유로화로 대체하려 해 달러화의 위상을 위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 끝없는 전쟁의 수렁에 빠지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을 타도했지만 중동의 안정과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끝없는 전쟁’의 시작에 불과했다. 아프간에선 탈레반과의 내전 때문에 발목이 잡혔고, 독재자 후세인이 2006년 사망하자 지도력 공백에 빠진 이라크에는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가 득세했다. 미국은 끝없는 테러와의 전쟁이란 수렁에 빠졌다.

아프간 철군까지 미국은 20년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을 이어왔지만 테러의 위협은 줄지 않았다. 테러 가담자를 사살할수록 가족 잃은 원한으로 테러 가담자들이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전쟁은 ‘돈 먹는 하마’가 됐다. 브라운대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전에만 2조3130억달러(약 2700조원)가 투입됐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국 내 철군 여론도 강해졌지만 막상 포스트 9·11 시대와 작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쟁을 시작하기는 쉬웠지만 끝내기는 어려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축을 아시아로 이동하는 ‘피봇 투 아시아’를 천명했고, 아프간 철군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2009년 오히려 아프간 주둔 미군 수를 전 정권 때보다 두 배 많은 10만명으로 늘리며 테러와의 전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고립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안보 공백 우려에 밀려 철군은 차기 정부 몫으로 떠넘겼다.

■ 포스트 9·11 시대 종언 가능할까

바이든 대통령은 9·11테러 20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30일 마침내 아프간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동맹국들과 국내의 비판 여론을 감수하며 전임 대통령 세 명이 못한 완전 철군을 강행했다. 그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 말고 분명하고 성취 가능한 목표에 맞춰 임무를 설정하겠다”며 아프간에 쏟아부었던 국력을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는 쪽으로 돌리겠다고 선언했다. 끝없는 테러와의 전쟁을 끝내고 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어젠다와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을 지낸 벤 로즈는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바이든은 20년 만에 미국을 역사의 새로운 시대, ‘포스트-포스트 9·11 시대’로 옮겨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프간 완전 철군을 9·11테러 이후 20년간 미국의 발목을 잡았던 포스트 9·11 체제를 끝내기 위한 첫걸음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선언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정세 오판과 준비 부족으로 인해 탈레반에 쫓기듯 빠져나왔고, 그 과정에서 미군 13명과 아프간 민간인 200여명이 IS 테러에 희생되면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연일 추락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포스트 9·11 시대를 끝내겠다는 선언을 넘어 미국 사회 전반의 인식과 제도를 그에 맞춰 바꿔나갈 힘이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테러세력이 여전히 건재한 것도 부담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오히려 테러단체들이 다시 득세하는 계기를 제공했고, 아프간이 테러단체 양성소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최근 9·11테러의 주범 알카에다가 미군이 빠진 아프간에 재건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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