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의 '검사내전' 다시 읽기

김태규 2021. 9. 1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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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김태규ㅣ정치팀장

“형법과 형사소송법부터 공부해야 하고….”

1년 전, 처음으로 검찰을 취재하게 돼 ‘걱정이 태산’인 후배에게 ‘국영수 중심으로 준비하라’는 식의 답을 내놓고, 초장부터 흥미를 잃고 다음 인사 때 도망칠까 싶어 한마디 보탰다. “<검사내전>을 읽어 봐. 난 낄낄대며 봤어.”

해학과 골계미로 가득 찬 <검사내전>을 읽고 저자 김웅의 글재주에 탄복했다.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 같은 형사부 검사의 일상을 담은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책을 내고 2년 뒤인 지난해 1월 그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거대한 사기극”이라며 사표를 냈다. 그를 아꼈던 선배 검사들은 “정치권에 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해 총선에 바로 출마하면 검사직 사퇴의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였지만 약 20일 뒤 그는 유승민 전 의원이 만든 새로운보수당으로 갔다. 두달 뒤 총선에선 미래통합당 후보로 당선됐고, 국민의힘 당대표에 도전하기도 했다. 기존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사고와 행보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고발 사주’ 의혹에 대처하는 김웅 의원의 태도는 그가 검사실에서 만났을 피의자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최초 보도 직후 그는 “당시 의원실에 수많은 제보가 있었다”며 당선되기도 전의 일을 ‘의원실에 접수된 공익제보’로 둔갑시키더니 결국엔 ‘내가 그 자료를 전달했을 수는 있지만 선거운동 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주장이 설득력 있는지 텔레그램 전송 상황만 되짚어봤다. <한겨레>가 입수한, ‘손준성 보냄’으로 표시된 사진파일 개수는 100장이 넘는다. 고발장 2건, 검·언 유착 의혹 제보자 지아무개씨의 실명 판결문 3건, 지씨의 페이스북 화면 등이다. ‘손준성’은 이걸 낱개 사진으로 분해해 최소 2장에서 최대 10장까지 묶어서 보냈다. 100여장의 사진이 20여개의 메시지로 소분된 것이다. 이들 자료가 조성은 당시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에게까지 전달된 것을 보면, 김 의원은 ‘손준성’이 보낸 20여개의 메시지를 일일이 체크하고 전송 버튼까지 눌러야 했을 거다. ‘손준성’이 보낸 어마어마한 내용의 자료를 이렇게 수고스럽게 전달해놓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조성은씨는 “꼭 대검 민원실에 고발장을 접수하십시오. 중앙지검은 절대 안 됩니다”라는, 김 의원의 당시 발언까지 전하고 있지만 그는 “‘거짓이다, 참이다’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고 했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치명상을 입게 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의혹 자체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김 의원의 ‘기억상실’ 주장도 상식에 맞지 않는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 <검사내전>을 다시 읽었다. 내가 왜 ‘이 글을 쓴 이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판단했는지 복기하고 싶었다. 엄숙해야 할 반성적 책 읽기였지만 과거 낄낄댔던 킬링 포인트에서 또 빵 터지고 말았다. “나는 지청에서 만난 부장을 잘 따랐다. 그렇게 된 계기는 어느 날 평소처럼 대들고 있던 나에게 부장이 대뜸 목검을 꺼내 들고 자신이 검도 유단자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생긴 것도 무섭고 말보다 목검부터 꺼내 드는 스타일이었지만 부장은 보기와 달리 무척 스마트하고 날카로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뛰어난 머리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대개 협박과 목검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자기 자신만큼 주관과 객관의 시각차가 극렬하게 벌어지는 것도 없다. 그래서 시작이 어찌 되었든 자기 이야기는 결국 자화자찬이자 미화 일색으로 끝난다.” 내가 오늘 하려는 말을 미리 적어놓았다. 그리고 “비틀어진 논리들은 가끔 빗자루를 들고 양탄자 밑으로 쓸어 넣은 뒤 잠시 잊어도 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도 세상 무너지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책을 끝냈다. 그는 이번 사건이 양탄자로 덮여 영영 잊히길 기대할 것이다. 그러면 세상 무너질 일이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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