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20주년 추모식 르포.."기억하자,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자"

뉴욕 | 김재중 특파원 2021. 9. 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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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그라운드 제로’ 공원에 인파 몰려
비장한 분위기 속 추모 이어져

미국 뉴욕시 맨해튼 남쪽 그리니치 스트리트와 풀턴 스트리트가 만나는 지점은 11일(현지시간) 아침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2001년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건물이 무너져내린 ‘그라운드 제로’에 조성된 추모공원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이날 추모공원에선 9·11테러 20주년을 맞아 아침부터 추모행사가 열렸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비극의 현장을 뒤덮은 비장한 분위기는 당연했지만, 20년 전의 사건을 딛고 미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고민도 엿볼 수 있는 행사였다.

■ “사악한 악령이 세상에 내려앉은 그날”

해마다 열린 추모식은 올해도 2977명에 달하는 희생자 유족들을 중심으로 개최됐다. 경찰은 추모공원 인근 멀찍이 철제 펜스를 치고 차량들의 통행을 통제했다. 행사장 입장은 희생자 가족과 친지에게만 허용됐다.

9·11테러 희생자 추모행사는 전통적으로 가족 대표들이 희생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20주년 행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내외와 버락 오바마·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참석하면서 규모가 예년보다 커지긴 했지만 행사의 기본 콘셉트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행사는 아메리칸항공 11편이 110층짜리 WTC 북쪽 타워와 충돌한 오전 8시46분 종을 울리고 묵념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같은 시각 뉴욕시 전역의 교회에서도 종이 울렸다.

아메리칸항공 11편에 승무원으로 타고 있던 딸 새라를 잃은 마이크 로는 유족 대표로 개회사를 했다. 그는 테러 당시를 “사악한 악령이 이 세상에 내려앉은 것처럼 느껴진 끔찍한 그날”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또한 “그날은 많은 사람이 평범한 이들을 뛰어넘어 행동한 날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2명씩 짝을 지어 연단에 오른 유족들은 9·11테러로 목숨을 잃은 아빠나 엄마, 형제자매나 자식을 향한 그리움을 담은 짧은 메시지를 낭독하고 희생자 이름을 번갈아 불렀다. 남편을 잃은 여성은 “아이들이 잘 자랐다. 하늘에서 편안히 쉬기를 바란다”면서 울먹였고, 엄마를 잃은 딸은 “앞으로도 하늘에서 계속 우릴 지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로의 아픔 위로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 조성된 추모공원에서 9·11테러로 떠나보낸 서로의 가족들이 생전 아는 사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유족이 얼싸안으며 위로하고 있다. 뉴욕 | AP연합뉴스
맨해튼 추모 현장
쌍둥이 빌딩 첫 충돌 8시46분 시작으로
6번 타종…뉴욕 전역 묵념

희생자 이름 낭독 중간에 추모의 종 타종과 묵념이 반복됐다. 유나이티드항공 175편이 남쪽 타워와 충돌한 오전 9시3분, 아메리칸항공 77편이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펜타곤 건물과 충돌한 9시37분, WTC 남쪽 타워가 붕괴한 9시59분,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이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에 추락한 10시3분, WTC 북쪽 타워가 붕괴한 10시28분에 종이 울렸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다른 유족들과 함께 서 있었고 따로 연설하지는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이 공개한 영상에서 “9·11테러가 벌어진 이후 우리는 곳곳에서 영웅적 행위를 보았고 국가 통합의 진정한 의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단결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점을 배웠다”면서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고 미국이 최고에 있게 하는 것이 단결”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9·11테러 직후 자원 입대가 늘어난 점을 언급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오늘도 내일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 미국인의 삶 송두리째 바꾼 9·11

유족들 2명씩 연단에 올라
희생자 2977명 눈물의 호명
“여보, 아이는 잘 자랐어요”
“엄마, 우리 계속 지켜봐줘”
바이든 대통령도 자리 지켜

9·11테러 20주년 하루 전날인 10일에도 많은 미국인이 추모공원을 찾았다. 9·11테러 10주년인 2011년 9월11일 완공된 추모공원은 남쪽 타워와 북쪽 타워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메모리얼 풀’이 각각 자리 잡고 있다. 가로세로 58.5m, 깊이 9.1m인 사각형의 메모리얼 풀 테두리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졌고, 안쪽으로는 물이 쉼 없이 쏟아졌다.

추모공원에서 만난 알렉스 램버그(64)는 어릴 적부터 살아온 뉴욕이 처참하게 공격받았던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램버그의 아들은 9·11테러 당시 WTC에 입주한 금융회사 블룸버그에 다녔는데 공교롭게 그날 근무를 친구와 바꾼 덕에 목숨을 건졌다. 그는 “아들은 살았는데 대신 아들의 친구가 목숨을 잃었다”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칸소주에서 온 로렌(36)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로렌은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를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면서 “9·11테러를 보면서 ‘아,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불안감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뉴욕에서 아주 먼 곳에 살았지만 이 사건이 가져온 불안은 가깝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9·11테러는 미국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9·11테러를 응징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났고, 추가 테러를 막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지면서 법과 제도가 바뀌었다. 무슬림을 비롯한 소수 인종 이민자들에 대한 의심도 커졌다. 로렌과 함께 뉴욕을 처음 방문한 마크(33)는 “사람들은 그때 ‘아, 우리가 위협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겠구나. 외교정책을 다른 식으로 가져가야겠구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추모와 동시에 미래를 보자”

9·11테러 이후 20년간 테러와의 전쟁을 이어왔지만 미국인들의 불안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9·11테러로 부모를 잃은 패티(61)와 그의 남편 돈(73)은 20년이 지났지만 근본적인 위협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돈은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봐라. 테러 조직이 이름만 바뀌었을 뿐 위협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돈은 마찬가지 이유로 미국은 아프간에 최소한의 병력을 남겼어야 하며 완전히 철군한 것은 실수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에 미군이 한국이나 독일에서 철수한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반대로 램버그는 미국이 과거의 위협에 너무 매달려 있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는 이제 히틀러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주만에 폭탄을 떨어트렸던 일본은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이제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렌은 “9·11테러는 원치 않았던 것이지만 우리는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동시에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그러므로 일종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모공원에 자라는 나무 중에는 남쪽 메모리얼 풀 근처에 ‘생존자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배나무가 한 그루 있다. 2001년 당시 폐허가 된 그라운드 제로에서 뿌리와 가지가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된 나무였다. 뉴욕시는 이 나무를 정성을 다해 키워 2010년 이 공원에 다시 옮겨 심었다. 이 나무 옆에 헌화된 조화엔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란 글귀가 쓰여 있었다.

20년이 지난 9·11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미국 앞에 놓인 새로운 과제다. 로이터통신은 “9·11 20주년은 정치지도자와 교육자들이 그날의 집단적 기억을 엷게 만들기 위해 조바심을 내는 가운데 도래했다”면서 “미국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7500만명이 9·11 이후에 태어났다”고 지적했다.

뉴욕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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