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의힘,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 냉정한 대응을
[경향신문]
국민의힘이 ‘고발 사주 의혹’을 여권의 정치공작으로 몰아가고 있다. 제보자 조성은씨가 지난달 11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만나 관련 논의를 했으며, 의혹이 보도된 지 8일 만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흠집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당내 유력 대선 주자인 윤 전 총장이 입건되는 등 사태가 확산되자 당혹스러워하는 것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전후 맥락도 따져보지 않은 채 정치공작으로 몰아가는 건 과도한 대응이다. 냉정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캠프는 12일 박 원장과 조씨가 정치공작을 공모한 의혹이 있다며 이를 ‘박지원 게이트’로 규정하고 나섰다. 캠프에선 아예 박 원장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3일 중 고발하겠다고 한다. 물론 국정원의 선거관여는 불법이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도, 제보자 조씨와 박 원장의 회동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국정원장이 정치 낭인에 가까운 젊은 여성과 식사할 만큼 한가로운 자리가 아니니 정치공작이 논의됐을 것’ ‘두 사람은 친밀하고 특수한 관계’라는 식의 주장에는 어떠한 논리구조도 없다. 저열하고 차별적인 공세일 뿐이다.
국민의힘 측은 공수처 수사를 두고도 ‘수사기관 사유화’라 비난한다. 그러나 고발장의 최초 발송자가 ‘손준성 (보냄)’으로 명시된 텔레그램 캡처 화면이 공개된 터다. 또 지난해 8월 국민의힘이 검찰에 낸 ‘최강욱 고발장’이 4월의 ‘손준성 보냄’ 고발장과 내용이 같고, 고발장 초안이 당시 법률자문위원장이던 정점식 의원실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러한 정황들은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할 만한 근거가 된다. 김웅 의원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공수처가 일부 적법하지 못한 행태를 보였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공수처 수사의 정당성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여권도 차분해질 때다. 더불어민주당이 대대적으로 쟁점화하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는 등 당정이 연일 공세를 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공작이라는 야권의 주장에 빌미를 제공하고, 공수처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발 사주 의혹이 대선판 전체를 뒤덮고, 여야 대선 주자들의 국가비전과 정책 경쟁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다. 공수처 역시 어떠한 예단도 없이, 오로지 사실과 증거에 따라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수사 과정에서 실책을 범할 경우, 창설된 지 얼마 안 된 수사기관이라 해도 면책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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