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김동섭 "에너지안보 마지노선 하루 생산 14만 배럴 위태..새 원유 탐사사업 필요"

정리=김우보 기자 2021. 9. 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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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섭 석유공사 사장
투자 축소·자산매각에..내년생산 12만 배럴로 줄어 에너지戰 비상
석유公에 부실낙인 거두고 '자원 국방부' 역할 위한 정부지원 절실
탄소중립 흐름에도 대비, CCU·암모니아 수소 사업 등 진출
[서울경제]

“신규 투자를 줄이고 보유 자산을 매각하며 내년에는 하루 생산량이 12만 배럴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는 하루 14만 배럴의 생산량은 유지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2만~3만 배럴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탐사 개발 사업에 나서야 합니다.”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12일 울산 본사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국내 유일의 자원 비축 전담 공기업으로서 석유공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미중 대립으로 공급망 이슈가 불거지고 있는 만큼 핵심 자원인 원유를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김 사장은 덧붙였다. 과거 자원 개발 실패로 떠안은 막대한 부채 때문에 수급 비상사태 시 공급을 책임질 공사의 역량이 떨어지는 데 대한 우려도 숨기지 않았다. 김 사장은 “석유공사는 국가의 에너지 안보를 책임지는 회사다. 에너지 분야의 국방부라 할 수 있다”며 “국가 안보가 위태로우면 국방 예산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에너지 안보가 흔들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석유공사에 대한 전향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탈(脫)탄소 흐름이 거세지만 에너지 시장은 단기에 급변하지 않는다”며 “탄소 중립 추세는 분명하지만 석유를 대체할 핵심 연료를 확보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인 만큼 공사의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시간여간 이뤄진 인터뷰에서 석유공사의 전략적 가치를 조명하는 한편 탄소 포집과 수소사업 등 공사의 미래 비전을 폭넓게 설명했다. /대담=황정원 경제부 차장 garden@sedaily.com

김 사장은 공사가 확보할 수 있는 원유량이 차츰 줄어드는 점을 우려했다. 지난 2018년 하루 기준 18만 배럴을 웃돌던 생산량은 지난해 16만 배럴로 11.5% 감소했다. 내년에는 12만 배럴까지 줄어들지만 공사의 재무 상황이 갈수록 악화해 당장 살림을 유지하기도 빠듯한 실정이라 뾰족한 방법이 없다. 석유공사의 재무 상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총부채만 18조 6,449억 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5,139억 원 늘면서 자산(17조 5,040억 원)보다 빚이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통상 4,000억~5,000억 원의 연간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4,000억 원에 달하는 이자비용을 포함해 영업외비용이 영업이익을 웃돌다 보니 부채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 사장은 “2010년을 전후해 해외 자산에 과도하게 투자하면서 (빚이 쌓였는데) 원금은 못 갚고 이자는 점점 불어나고 있다”며 “보유 자산을 다 팔아 빚을 메우라는 얘기도 있는데 자산을 매각하면 공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토로했다. 재무 개선을 위해 보유 자산을 시장에 전부 내놓으면 비상 자원을 확보해야 할 석유공사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는 얘기다.

해외 자산을 판다 한들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김 사장은 “비우량 자산을 정리하려면 광구 주변 환경을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면서 “일례로 캐나다에 보유한 자산의 경우 매각해도 공사 수익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사의 해외 자산 처리가 늦어지는 것을 두고 재무 구조 개선 노력을 게을리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우리도 인수자가 나타나면 얼른 팔고 싶다”면서 “광구의 자산 가치가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에 팔지 않으면 손해임이 분명하지만 팔아도 환경 복구 비용을 감당해야 해 손해를 보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비우량 자산을 매각할 때 인수자가 알짜 자산의 지분을 함께 요구하는 일도 잦아 공사로서는 자산 처리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외부의 지원 없이는 석유공사의 자체 재무구조 개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김 사장은 “우리 자체 노력으로 재무구조를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의 획기적인 지원이 없으면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 사장은 “정부로서는 부채가 막대한 석유공사에 예산을 투입하는 걸 껄끄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국방 예산을 투입할 때 국가 안보를 우선 고려하듯 석유공사의 예산을 책정할 때도 자원 안보가 위협받는 현실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매년 1,000억~1,500억 원 수준의 정부 지원이 이뤄진다면 이자는 물론 원금도 차츰 갚아나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김 사장은 “정부의 직접 출자가 어렵다면 공사의 해외 개발 생산 자산에 대한 출자 비율을 조정하는 것을 고려해봄 직하다”며 “해외 개발 생산 자산에 대한 공사와 정부의 출자 비율을 탐사 자산 수준으로 조정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현재 해외 개발 생산 자산과 탐사 자산에 대한 석유공사·정부의 출자 비율은 각 9 대 1, 7 대 3 수준이다.

김 사장은 정부 지원이 늦어질수록 공사의 원유 생산 규모가 줄면서 자원 안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점도 고민거리다. 김 사장은 “미중 간 대립 구도가 치열해져 만에 하나 원유를 운반해온 해상 운송로가 막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돈 아끼는 데 매몰돼 있다 보면 훗날 큰 화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주저하는 사이 주요국은 비상 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중국은 3대 국영기업을 동원해 유전 개발을 확대하는 동시에 자산·기업 인수를 위한 차관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자원 개발 기업 인수합병(M&A) 등에 투입한 금액은 107억 달러(약 12조 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전 세계적인 탈탄소 흐름에 따라 석유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김 사장은 “아직은 이른 감이 있다”며 선을 그었다. 석유의 60%가 자동차와 항공, 선박용 연료로 사용되는데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사장은 도구나 약품, 의류 원료로 쓰이는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기 위한 석유 수요도 당분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사장은 “한국의 발전량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히는 비중은 2020년 기준 약 7% 수준에 그친다”며 “화석연료의 자리를 신재생에너지가 대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원유 사업 등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저탄소 에너지 확보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우선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일환으로 동해안에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공사는 그간 화석연료를 생산하던 동해 가스전을 플랫폼 삼아 200㎿ 규모의 발전단지를 구축하고 있다. 석유공사는 이 사업이 본격화할 경우 1만 6,000여 개의 일자리 창출과 전후방 연관 산업 육성 등의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사장은 “노르웨이 국영 석유회사인 에퀴노르사와 공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해상풍력 기술을 보유한 에퀴노르사와의 협업으로 공사의 역량을 한층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석유공사는 생산이 종료되는 동해 가스전 지하의 빈 공간을 이산화탄소 저장 공간으로 활용하는 탄소 포집·저장(CCS)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대규모 CCS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은 동해 가스전이 처음이다. 석유공사는 향후 30년간 매년 40만 톤, 총 1,2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 사장은 “각국이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내걸고 있지만 제철 공정 등에서 나오는 탄소를 당장 줄일 방법이 없다”면서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이 탄소를 땅에 묻는 것인데 지층의 성질을 분석하고 지하 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공사의 전문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암모니아를 통한 수소 운송·저장 사업으로 수소시대에 대처할 계획이다. 수소를 대량 운송하려면 기체 상태의 수소를 액체로 바꿔야 하는데 암모니아는 현 기술 수준에서 가장 효율성 높은 수소 운송·저장 매개체로 꼽힌다. 특히 암모니아의 끓는점은 섭씨 영하 33도로 수소(영하 253도)보다 높아 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김 사장은 “공사는 그간 액화석유가스(LPG)도 다뤄왔는데 LPG와 암모니아의 성질이 상당히 유사하다”며 “LPG를 저장하고 운송하면서 노하우를 쌓아온 만큼 암모니아 비축 사업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사장은 신산업이 활성화할수록 구조조정 압력도 줄어들 것으로 봤다. 인력을 강제로 내보내거나 임금을 삭감하기보다는 불필요한 인력이 없도록 전도 유망한 사업을 키우는 게 보다 효율적이라는 시각이다. 김 사장은 “수년간 지속된 임금 삭감과 인력 축소로 공사 직원들의 상실감이 큰 것 같다”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구조조정을 이어가겠지만 사람을 무조건 내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민간기업에 근무할 당시 배터리 사업을 새로 추진했는데 사업 규모가 커지자 근무 인원도 점점 늘었다”며 “공사의 신산업이 활성화하면 인력이 필요한 곳도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He is...

△1957년 포항 △1979년 서울대 조선공학 학사 △1989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인더스트리얼앤드웰딩시스템엔지니어링(Industrial&Welding System Engineering) 박사 △1990년 쉘사 아태 지역 매니저 △2009년 SK이노베이션 기술원장, 기술총괄 사장 겸 CTO △2016년 울산과학기술원 정보바이오융합대학장 △2021년~ 한국석유공사 사장

정리=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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