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테러와의 전쟁'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할 수 있을까?

윤기은 기자 2021. 9. 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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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프가니스탄 수감자들이 2002년 2월2일(현지시간) 쿠바 관타나모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돼 있다. 관타나모|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20년 전쟁을 종료한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의 유산인 관타나모 테러리스트 수용소를 임기 내에 없앨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권 무법지대’로 불리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는 증거없는 구금과 잔혹한 고문행위가 자행돼 왔다. 미국에서는 수용소 폐쇄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1일(현지시간) 바이든 정부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버락 오바마 정부의 수용소 폐쇄를 방해한 법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관타나마 수용소는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듬해 쿠바 관타나모만 미 해군기지에 만든 감옥이다. 당시 부시 정부는 9·11 테러가 개인이 일으킨 범죄가 아닌 전쟁 행위라고 판단했고, 9·11 테러 주동자들은 미 헌법을 적용받지 않는 군사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미국은 아프간, 파키스탄 등지에서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이들을 잡아들여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재판과 심문을 진행해왔다. 부시 정부 당시 이곳에는 최대 677명까지 수용돼 있었다.

쿠바 관타나모만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 위치. 구글지도 캡쳐


하지만 무법지대와 다름 없는 관타나마 수용소에서 물고문 등 인권 유린 행위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미군은 테러 용의자들에 대해 수일간 잠 안 재우기, 구타, 거꾸로 매달기 등의 온갖 잔인한 가혹 행위를 하며 심문을 진행했다. 수감자 최소 9명이 감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감자 대부분이 군법원의 체포 동의 절차 없이 이곳에 갇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지구에서 가장 비싼 교도소’라는 별명을 가진 만큼 수용소 유지 비용도 상당했다. 뉴욕타임스는 2018년 관타나모 수용소의 시설 및 경비인력, 부속 군사재판소 등을 유지하는 데 5억4000만달러가 소요됐다고 전했다. 1인당 연간 수감 비용도 13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미군의 인권 침해 행태와 막대한 비용 소모로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목소리가 커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내에 관타나모 수용소를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관타나모 수용소를 1년 이내에 폐쇄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수감자들을 뉴욕연방법원으로 옮겨 재판을 지속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무혐의 처분이 나거나,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된 수감자 197명을 석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8년의 임기 동안 끝내 수용소를 폐쇄하지 못했다. 2009년 상원이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예산안을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공화당 뿐 아니라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테러리스트를 본토에 데려올 수 없다”며 예산안 편성에 반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정부의 결정을 뒤집고 2018년 관타나모 수용소를 유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수감자 백명 이상을 풀어준 조지 W 부시 정부나 오바마 정부와 달리 트럼프 정부는 2018년 단 한명만 석방했다.

결국 바이든 정부는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 철군을 추진하다가 중도에 포기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내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공약했고, 지난 7월 “미국의 국가 안보 보호에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50대 모로코인 남성 수감자 1명을 고국으로 이송했다. 당시 미 국무부는 “미국과 동맹의 안보를 지키면서 관타나모 억류 인구를 책임감있게 줄이기 위한 신중하고 철저한 절차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완전히 폐지하기 위해 수감자 이감 및 재판 진행 문제 등 오바마 정부가 겪었던 문제들과 다시 부딪쳐야 한다.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아직도 9·11 테러 사건 용의자를 포함해 39명이 수감돼 있으며 재판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AP통신은 바이든 정부가 수감자들의 이송 및 재정착을 담당할 직책을 국무부에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화당이 수용소 폐쇄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도 바이든 정부의 걸림돌이다. 오바마 정부 당시인 2016년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미국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겠다”고 선언한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아직까지 수용소 폐쇄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수용소 폐쇄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부시 정권 당시 만들어진 ‘테러리스트에 대한 군사력 승인 법안’을 없애거나 개정하려면 의회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미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의석을 절반씩 차지하고 있어 바이든 대통령의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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