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칫거리 '차박족', 코로나 시대 맞아 상생의 길 찾아야 한다

엄민용 기자 2021. 9. 1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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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남전1리 동아실계곡 인근에 캠핑을 하는 사람들의 텐트와 이들이 몰고 온 차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갬핑·차박족’ 문제, 무조건 막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캠핑·차박족과 지역주민이 상생할 길이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시대를 못 쫓아가는 정부 행정입니다.”

‘캠핑·차박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인 강원도 인제군 남면 남전1리 전상천 이장의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해외로의 발길이 막힌 사람들이 국내여행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인파로 붐비는 곳보다 한적한 자연의 품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생활의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캠핑·차박족’이다.

남전1리 동아실계곡에서 주민들이 나뭇가지를 걷어내는 등 정화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내여행의 변화 중 하나는 차에서 캠핑을 즐기는 ‘차박’이 대세로 떠올랐다. 하지만 적지 않은 ‘차박 명소’들이 불법 주차와 넘쳐나는 쓰레기, 캠핑 금지구역에서 버젓이 야영에 취식까지 하는 얌체 차박족 등 다양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차박과의 전쟁’에 돌입하는 지자체들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캠핑·차박족들의 얌체 행동에 몸살을 앓아온 강원도 속초시는 설악동 공영주차장 화장실 폐쇄 조치에 나섰다. 속초시는 지난달 9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설악동 공영주차장 내 화장실 4곳 가운데 B지구 화장실 1개와 C지구 화장실 2개를 임시 폐쇄했다. 다만 이용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B지구 주차장 화장실 1곳과 설악동번영회의 협조를 받아 인근 상가 화장실 1곳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부분 개방한다.

남전1리 주민들이 모아놓은 쓰레기들.


화장실 폐쇄는 일부 캠핑·차박족들이 개인 캠핑카와 카라반 물탱크를 화장실 물로 보충하는가 하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는 민원이 폭주하는 데 따른 특단의 조치다.

강원도 양양군도 차박족들이 주차장뿐 아니라 소나무밭 안까지 캠핑카를 몰고 와 주민들과 다른 관광객에게 피해를 주자 설악해변의 해송림 입구를 아예 막아 버렸다.

이에 대해 양양군 측은 “주민들의 주거지 주변에서 늦은 밤까지 큰 소리로 떠들어 생활불편이 잇따르고,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이용해야 하는 주차장을 차박족이 장기간 사용해 민원이 잇따랐다”며 “일부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사람들 때문에 대다수 캠핑 동호인이 편의시설은 못 쓰게 된 셈”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모든 지자체가 캠핑·차박족 문제의 해법을 ‘차단’에서 찾는 것은 아니다. 캠핑·차박족을 막지 않으면서 지역 주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상생 방안을 내놓은 곳도 있다.

남전1리 마을 곳곳에 쓰레기들이 무분별하게 버려져 있다.


충북 충주시는 최근 달천강을 따라 넓게 펼쳐진 자갈밭 진입로 입구에 ‘차박’과 ‘임시주차장’ 구역을 나누는 팻말을 세웠다. 임시주차장에는 ‘차박 금지’라는 안내문도 붙였다. 쓰레기를 분리배출할 수 있는 임시집하장과 개수대도 도로변에 설치했다. 깔끔한 주차장과 각종 시설들이 마련되면서 자갈밭은 번듯한 캠핑장으로 변했다. 이들 시설은 충주시가 2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

충주시가 차박을 금지하지 않는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 때문이다. 지난 5월 한 달 동안에만 달천강변을 찾은 캠핑·차박족이 3만5000여 명에 이르고, 이들 가운데 38%(1만3300여 명)가 충주 시내를 찾았다는 사실이 휴대폰 빅데이터 분석에서 밝혀졌다. 충주시 측은 “캠핑·차박을 즐기는 사람 중 상당수가 충주에서 장을 본다. 따라서 캠핑·차박을 막으면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이들을 무조건 막을 것이 아니라 충주를 찾는 캠핑·차박족을 대상으로 직거래 장터를 여는 등 지역주민들과 상생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고 전했다.

전상천 이장이 마을의 특산물 중 하나인 능이버섯을 들어보이고 있다.


전상천 이장이 주목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캠핑·차박족 문제는 주차·쓰레기 문제 등만 해결할 수 있다면 관광을 활성화하고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 이장은 지적했다. 다만 이 문제는 지역주민과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부 차원의 ‘열린 행정’이 필요하다고 전 이장은 전했다.

“남전1리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서늘한 그늘이 드리워진 동아실계곡이 있고, 여행 명소로 떠오른 자작나무숲도 있어 캠핑·차박족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때문에 쓰레기 처리 문제 등으로 골치를 썩고 있다. 특히 음식물쓰레기 때문에 밤마다 야생동물이 민가로 내려와 또 다른 피해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캠핑이나 차박을 하려는 이들의 발길을 막을 권한이 주민들에게는 없다. 더욱이 이들이 머무르는 동안 인제의 먹거리를 소비하고 인근 관광지도 찾는 것이 분명한데, 우리 마을만 좋자고 막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상생의 길을 찾는 것이 답이다.”

전 이장은 상생의 방안을 찾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정부의 무관심’을 꼽았다. 지자체는 지역주민을 위해 행정 편의와 재정 지원을 하려 애쓰지만, 정부의 규제 등에 묶여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캠핑과 차박을 하는 분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싶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이 협조를 부탁하고 안내를 하면 잘 따른다. 문제는 그분들이 쓰레기를 쉽게 분리배출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고 화장실과 개수대 등 위생시설도 갖춰져야 하는데, 그런 시설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일삼는 것이고, 그 불편을 감수하고 처리하는 것은 고스란히 주민의 몫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 이장은 “규제를 통해 자연환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었으면 규제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산림청 등은 옛 규제만 고집하며 산림청 관할 지역에는 개수대·화장실 하나 못 짓게 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나 용변을 볼 수밖에 없고, 깨끗한 계곡에 오물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분들이 양심이 없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불법을 유도하는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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