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필감성 감독의 20년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웬만한 사람들은 애초에 포기하고 남을 시간 동안 영화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다 내버려 두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영화를 향한 마음은 쉽게 단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버티고 견뎌, '인질'이라는 열매를 얻었다. 그러니 필감성 감독의 20년은 헛되지 않았다.
최근 개봉된 영화 '인질'(감독 필감성·제작 외유내강)은 어느 날 새벽, 증거도 목격자도 없이 납치된 배우 황정민을 그린 리얼리티 액션스릴러다.
이번 영화는 지난 2002년 단편 영화로 평단에 주목을 받았던 필감성 감독의 상업 영화 입봉작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입봉 제의를 받았지만, 영화를 개봉하기까지 약 20년이 걸린 셈이다. 필감성 감독은 이에 대해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준비하던 영화가 소위 말해서 엎어졌다. 그런 과정들이 계속 있었다"면서 "입봉 하기까지 오래 걸린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봤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하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 입봉을 위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인질'은 긴 시간 방황하던 필감성 감독이 마지막으로 '진짜'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작품이었다. '미스터 우'라는 원작이 있긴 했지만, 필감성은 원작과는 다른 방향성으로 '인질'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미스터 우'가 구출에 초점을 맞췄다면, 필감성은 납치된 톱배우가 스스로 탈출하는데 중점을 뒀다.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리얼리티와 에너지였다. 필감성 감독은 "납치 스릴러 장르가 새로운 건 아니지 않나. 어떻게 하면 새로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우리가 아는 실제 캐릭터를 영화에 대입시켜서 장르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의 중간 지점을 찾아보자 했다"면서 실제 배우인 황정민을 극 중 캐릭터로 활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많은 배우들 중에 왜 황정민이었을까. 필감성 감독의 답은 단순했다. 황정민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딘가 묶여 있는 장면이 많은 상황에서 상반신만으로 납치된 캐릭터의 스펙터클한 감정을 가장 잘 보 연줄 수 있는 배우는 황정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황정민이라는 실제 캐릭터를 영화 안에 끌고 들어오는 일은 부담스러운 요소이기도했다. 자칫하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필감성 감독은 "부담스러웠지만 새로운 지점을 찾아보자는 면에서 과감히 써보자고 했다"면서 "시나리오 원안 작업을 하고 황정민 배우에게 조심스럽게 써도 되냐고 했더니 적극적으로 써도 된다고 해서 용기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처음 시나리오 속 황정민은 필감성 감독이 생각하는 '배우 황정민'이었다. 필감성 감독의 상상으로만 만든 '인질' 속 황정민은 실제 황정민과 조금 거리가 있었다. 실제와 영화의 간극을 좁힐 수 있었던 건 황정민의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황정민 배우는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주시는 분"이라는 필감성 감독은 "에코백도 그렇고 시사회 후 매니저를 회식에 놔두고 혼자 집에 가는 것도 황정민 배우가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초고에서는 편의점 앞에서 괴한들과 시비가 걸렸을 때 참고 넘어간다는 설정을 황정민이 "나는 욕을 했을 것"이라고 해서 바꾸기도 했다.
황정민은 캐릭터 뿐만 아니라 난항을 겪고 있던 인질범 5인방 캐스팅까지, 여타 영화에서 다뤘던 인질범들과는 다른 유형의 인질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는 필감성 감독은 배우 오디션에 공을 들였다. 1000명이 넘는 배우들을 오디션을 통해 만났지만, 선택을 하기까지 골머리를 앓았다. 이에 황정민이 인질범 배우 오디션에 직접 참석해 참가 배우들과 함께 합을 맞춰주면서 필감성 감독의 선택에 많은 도움을 줬다.
또한 필감성 감독은 촬영 전 인질범 5인방에 캐스팅된 배우 김재범 류경수 이호정 정재원 고영록과 진행한 리허설 과정에도 도움을 준 황정민에게 깊은 감사를 보냈다. 필감성 감독은 "황정민 배우가 리허설에 같이 참여하겠다고 하더라. 배우들과 소통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면서 "현장 왔을 때는 리허설 한대로 임했기 때문에 편한 면이 있었다.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서 배우들이 주눅 들 수도 있었는데 황정민 배우가 독려를 해줬기 때문에 촬영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노력 끝에 완성한 '인질'을 코로나 시국에 개봉하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렇지만 필감성 감독은 개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여름 시즌에 좋은 영화들과 함께 개봉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심약해서 반응들을 못 찾아보다가 호평이 많다고 해서 찾아봤어요. 배우들 칭찬이 많아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 영화를 통해서 배우들을 잘 만들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은 것도 있었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스스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던 필감성 감독은 '인질'로 버텨온 시간들에 대한 결실을 보게 됐다. 그 결실이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길, 길지 않은 시일 내에 필감성 감독의 다음 작품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NEW]
인질 | 필감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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