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잔디 따라 '열달 일하고 두달 사라지는' 나는 일용노동자

한겨레 2021. 9.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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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_ 조경노동자 성희씨
게티이미지뱅크

바래기, 왕골풀, 독새풀, 건반부리, 재갯잎, 쇠돔…. 모르는 사람은 없는 줄 알지만 대학교 조경 노동자 성희(가명)씨에게 풀은 모두 제 이름이 있다.

“클 때 할머니한테 밭농사를 배우면서 풀을 맸어요. ‘이건 뭔 풀이에요, 할머니?’ 물으면 다 알려주셨어요. 학교에서 풀을 매다 보면 그런 게 다시금 영화필름 지나가듯이 떠올라요. 가난했던 옛날엔 독새풀로 죽을 쒔어요. 재갯잎은 질경이인데, 백장잎이라고도 해요. 백년, 천년 죽지도 않고 잘 산다고, 어른들이 이름을 잘 지었어요. 똑같은 풀도 지역마다 이름이 달라요.”

대학교 조경은 철마다 달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일주일 계획과 그에 따른 일과가 분명하다.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은 인원이 일해 “저녁밥 먹고 누우면 온몸이 가라앉아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할 만큼 노동 강도가 세다.

“3월에는 죽은 나뭇가지와 낙엽을 정리하고, 비올라와 이태리봉숭아를 심어요. 4월부터는 예초기로 풀 베고 손으로 매고, 소나무 전지에 들어가요. 그 일상이 여름까지 이어져요. 물도 주고 농약도 치고, 엉뚱하게 비가 와서 나무가 넘어지는지 봐야죠. 8월 말에 메리골드와 국화를 심고, 9월에는 회양목과 철쭉을 가지치기하는데, 학교가 꽤 넓어 20일은 걸려요. 남자들이 기계로 자르고, 여자들이 나뭇가지를 다듬고 길이를 맞춰 플라스틱 끈으로 묶어요. 10월에는 굵은 나무 차례로, 11월까지 가요.”

성희씨는 어려서부터 일이 몸에 배 조경 일이 익숙했다. 풀만 아니라 나무도 어려서부터 베고 묶고 머리에 이고 날랐다는데, 그이 노동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풀과 꽃과 나무와 함께하는 일

성희씨는 한국전쟁 몇해 뒤 태어났다. 전후 세대, 베이비붐 세대다. 서른 초반 서울로 가기 전까지 고향에서 결혼하고 첫애를 낳았다. 더러 친구들은 학교나 공장을 찾아 일찍 다른 곳으로 떠났다. ‘고향’ 하면 늘 바다를 떠올린다. 어리고 젊은 그는 그때 무슨 꿈을 꿨을까.

“뭘 꿈꿀 여유가 없었어요. 봐봐요. 할머니 계시지, 엄마·아빠 계시지, 남동생 넷, 여동생 하나, 이렇게 아홉 식구예요. 밥하고 빨래하고 참참에 밭에 나가 일했어요. 나, 아홉살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 밥했어요. 보리쌀 확독에 갈아서. 동생들 먹이고 도시락 싸 학교 보내고, 교복 다리미질해 입혔어요. 딸이라고 아버지가 초등학교만 보냈어요. 아들들은 고등학교, 대학교 보내면서. 막내 여동생은 그래도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돈벌이 나가는 부모를 대신해 성희씨는 집안일을 책임졌다. 엄마를 보면 진학 못 한 서운함을 감추게 되더란다.

“엄마가 시집오니까, 논도 밭도 아무것도 없더래요. 그래서 엄마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낙지 잡으러 다니고, 가을부터 초봄까지는 굴 까러 갔어요. 오후 물때에 나가면 오전에는 밭일하고, 오전 물때면 다녀와서 밭에 갔죠. 엄마가 힘들게 일하니까 불쌍한 생각만 들지, 맨 나만 일 시킨다, 그런 생각은 안 했죠. 엄마는 조금씩 밭을 사고 논도 사고 살림을 일으켰어요.”

배 타고 나가 굴을 심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고향 요양원에 계신다.

“엄마 살아계실 때 내가 ‘엄마…, 엄마 내가 엄마 많이 사랑해!’ 그 말을 해야 하는데 아직 못 했어요. 나는 엄마한테 다 배웠어요. 일 다녀오면 엄마가 ‘아이고, 뻗치다’ 소리를 우리 듣는 데선 절대 안 했어요. 표준말은 ‘힘들다’인데, 전라도 말은 ‘뻗치다’ 해요. 주무시다 꽁꽁 앓으면 앓았지, 한번도 그 말을 안 했어요. 내가 어깨랑 다리 주무르면 ‘야야, 인자 시원하다’ 그러셨죠. 엄마가 아무리 뻗치다고 안 해도 내가 젤로 잘 알죠. 내가 큰딸이잖아요.”

퇴직금 없는 ‘1년 열달’ 일용직

성희씨도 어머니처럼 제 손으로 생활을 일궜다. 조경 일이 도움이 되었다.

“12월에는 얼지 말라고 꽃잔디에 거적을 깔아주고 배롱나무 몸통과 가지를 싸줘요. 속으로 ‘겨울은 추우니까, 잘 움츠려 있다 봄에 몸 풀고 나오자’라고 말해줘요.”

그런데 그 인사를 끝으로 성희씨는 1월과 2월 두달간 동료들과 함께 학교에서 사라진다.

“나 들어가기 전에는 조경이 직원이었는데, 다 자르고 일용직으로 써요. 우리를 관리하는 팀장님은 학교 직원이에요. 3월에 계약서를 쓰는데 12월 며칠까지 일하는 기간과, 다치는 것은 책임 안 지니 조심해서 일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재밌죠? 사인하면 나중에 총장님 도장이 찍혀서 와요. 4대보험 되면 직원으로 써야 하니까, 우리는 4대보험이 안 돼요. 희한하죠? 예전처럼 직원으로 해서 보너스도 주고 퇴직금도 줘야 하는데 그걸 안 주려고 일용직으로 밀어붙여서, 10개월 일하고 두달 쉬고를 해마다 반복해요. 근로기준법은 우리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월급 없는 두달, 그때마다 식당에서 일했다. 올해는 코로나로 자리를 못 얻어 정말 쉬었다. 십수년, 수십년을 일해도 성희씨는 퇴직금을 못 받는다. 적정할 리 없는 일당뿐, 더 붙는 건 없다. 추석 때 참치선물세트를 하나 받는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는다.

“예전에 지금은 그만둔 관리처장이, 비만 오면 일을 못 하게 해요. 일당 안 주려고. 출근했는데 비가 오면 다시 집으로 가래요. 학교 오다가도 비 오면 되돌아가래요. 그땐 월급을 통장이 아니라 봉투로 줬거든요. 중간에서 누가 우리 일당을 가로채도 모르잖아요, 근거가 없으니까.”

처장이 바뀌고 달라졌지만, 다른 곳에서 누군가에게 여전히 벌어지는 일이다. 조경 노동자는 학교 일을 하지만, 학교 직원이 아니라 학교에서 주는 제복이 없다. 그래서 외부 사람 취급받거나, 눈길을 피하는 직원들을 보기도 한다. 없는 이 취급을 받으면 마음이 뻗치나, 성희씨는 또 학교에서 누군가 건네는 “고생하십니다!” 한마디에 하루 피로를 싹 푼다.

“우리는 험한 막노동이잖아요. 힘든 일 하는 만큼 잘해주면 좋죠. 한 대학 밥을 먹고 사는 똑같은 사람인데 일용직으로 쓰는 게 좀 섭섭하죠. 10개월 계약도 이해가 안 돼요. 조경이든 청소든 사무든 모든 일이 대우받고 평등했으면 좋겠어요.”

박수정 _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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