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우아한 커피라는 의미 [박영순의 커피 언어]

- 2021. 9. 1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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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맛이 좋아서 칭찬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와, 맛있다"거나 "음, 좋은데"라는 반응만으로는 부족하고 아쉽다.

왜 사람에게서 그윽한 커피향이, 커피에선 좋은 인성을 지닌 인물이 떠오르곤 하는 것일까? 감각(sensation)과 지각(perception)을 넘어서 인지(cognition) 단계에 들어서면 커피와 사람은 감성을 자아내는 같은 오브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을 받을 때 "커피에서 결(texture)이 느껴진다"고 하면 더욱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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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미가 선사하는 행복이란, 정체성으로 한정된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처럼 한없이 풍성하다.
커피 맛이 좋아서 칭찬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와, 맛있다”거나 “음, 좋은데”라는 반응만으로는 부족하고 아쉽다. 두루뭉술한 표현은 커피를 대접한 상대에게 형식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커피 향미의 좋은 면모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인상을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정다감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숙녀에게 포근함을 느끼고, 말쑥하고 세련된 차림을 한 신사는 나로 하여금 흐트러짐은 없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매사 군더더기 없이 일을 처리하는 전문가들은 잡미 없이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듯한 하와이 코나 커피를 떠오르게 한다.

왜 사람에게서 그윽한 커피향이, 커피에선 좋은 인성을 지닌 인물이 떠오르곤 하는 것일까? 감각(sensation)과 지각(perception)을 넘어서 인지(cognition) 단계에 들어서면 커피와 사람은 감성을 자아내는 같은 오브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멋진 작품을 만나면 “델리케이트(delicate)하고 엘레강스(elegance)해요. 판타스틱(fantastic)!”이라고 감탄했다. 멋진 향미를 지닌 고급 커피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도 이와 같다. 델리케이트는 사전적 의미로 ‘연약한’ ‘여린’ 등의 뜻이 있지만 향미의 세계에서는 ‘섬세한’으로 활용된다. 커피 향미가 섬세하다는 것은 여린 속성들마저 잘 표현되는 경지를 일컫는다.

델리케이트의 핵심 가치는 균형(balance)이다. 꽃, 과일, 허브, 견과, 향신료, 흙, 발효-숙성 등 커피에 들어 있는 다양한 그룹의 향들이 제각기 생긴 화학구조에 따라 시간순으로 입안에서 모두 피어난다. 이런 느낌을 받을 때 “커피에서 결(texture)이 느껴진다”고 하면 더욱 적절하다.

엘레강스 역시 최고의 찬사에 동원되는데, 중심이 되는 가치를 심플(simple)이라고 봐도 좋다. 여기서 단순함이란, 요란함과 과장됨의 반대말이다. 커피가 발휘하는 향미 속성의 종류 자체가 적은 게 아니라 결점이 없이 하나하나의 속성이 정제되고 명료한 상태를 은유한다. 키를 잘 맞춰 델리케이트하고 일체의 잡음이 없어 엘레강스한 관현악 연주를 연상하면 좋다.

문제는 델리케이트하고 엘레강스하지 못한 커피들을 가려내는 것이다. 항간에는 질이 좋지 않은 커피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좋은 향미의 커피들이 비싸기만 한 것도 아니다. 거꾸로 비싼 커피들이 반드시 향미가 좋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일상에서 커피를 마실 때, 우선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 깨끗함(cleanness)이다. 제아무리 향이 풍성하고 개성이 강한 커피라도 깨끗한 커피를 이기지 못한다. 커피에 입문할 땐 꽃과 과일향이 화사한 에티오피아 하루 내추럴 커피를 선호하지만, 점차 향미의 윤곽이 선명하고 명료한 콜롬비아 라모렐리아 워시드 커피에 빠져들게 된다.

훌륭한 커피에 대한 감성은 때로는 하나의 형용사로 압축되는데, 판타스틱도 그중의 하나다. 커피 평가에서 엑셀런트(excellent)를 뛰어넘어 100점 만점에 다가가는 커피에게는 아웃스탠딩(outstanding), 때론 그레이트(great)라는 묘사가 붙기도 한다. 커피가 주는 행복은 끝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듯….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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