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폭포"..20년 전 아픔 기억하는 뉴욕 '메모리얼 풀' [랜선 사진기행]

송경은 2021. 9. 1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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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의 9•11 메모리얼 가든의 ‘메모리얼 풀’. 과거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있던 터에서 9•11 테러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패널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랜선 사진기행-65] 미국 뉴욕 로어맨해튼 중심부. 20년 전까지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있던 2개 터에는 빌딩 대신 마치 모두의 눈물인 듯 물줄기가 하염없이 흐르는 인공 폭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9·11 테러 희생자들 이름이 새겨진 패널 아래로 폭포수처럼 계속 물이 흘러나왔다. 물은 천천히 빌딩 터를 쓰다듬으며 한곳으로 모였다.

패널 위의 한 여성 희생자 이름 뒤에는 'and her unborn baby(그리고 배 속 아기)'가 적혀 있었고, 어떤 이름을 만지며 한참을 허공에 이야기하던 중년 남성이 떠난 자리에는 흰색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테러 공격으로 남은 9·11 테러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9·11 메모리얼 뮤지엄은 2001년 9·11 테러와 1993년 WTC 폭탄 테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당시의 아픔과 역사, 테러가 미친 영향 등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9•11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패널. /사진=송경은 기자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보스턴에서 출발한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미국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1WTC)에 충돌했다. 17분 뒤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남쪽 타워(2WTC)에 충돌했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했던 오사마 빈라덴의 무장단체 알카에다가 항공기를 납치해 자행한 테러 공격이었다.

테러범들은 미국 동부 해안 3개 공항에서 국내선 항공기 4대를 납치해 뉴욕 WTC와 버지니아주 알링턴군의 미 국방부 본부인 펜타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워싱턴DC로 향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맨해튼 중심가의 두 쌍둥이 빌딩은 화재가 발생한 지 1시간42분 만에 완전히 붕괴됐고, 이 여파로 뉴욕에서만 약 2750명이 사망했다. 이날 오전 9시 37분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충돌로 역시 큰 화재가 발생한 펜타곤 일대에서는 184명이 사망했다.

승무원과 승객들의 저지로 유일하게 목표물 타격에 실패한 유나이티드 93편은 같은 날 오전 10시 3분께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동남쪽으로 약 129㎞ 떨어진 지점에 추락했다. 더 큰 참사는 막았지만 안타깝게도 승무원과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9·11 테러는 19명의 테러리스트 전원을 포함해 총 2977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부상자 규모도 2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9•11 테러 후 재건 과정에서 쌍둥이 빌딩의 잔해 중 마지막으로 수거한 강철 기둥인 ‘라스트 컬럼’(왼쪽). 오른쪽은 9•11 메모리얼 가든 전경이다. 쌍둥이 빌딩 터에 조성된 인공 폭포 주변에는 오크나무가 심어져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아무리 많은 날이 지나도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울 수는 없다).' 9·11 박물관 입구에는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관람로를 따라 걷는 동안 테러 당시 급박하고 처참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과 사진, 전화 음성이 아우성치듯 이어졌다. 실제 현장에서 수거한 빌딩 파편들을 소재로 만든 조각 등 뼈아픈 역사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볼 수 있었다.

9·11 테러 이후 WTC는 2014년 '프리덤 타워'로 불리는 제1 세계무역센터(One WTC)로 새롭게 재건됐다. 높이 541m에 지상 94층짜리 초고층 빌딩으로 미국에서 가장 높으며,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한국 롯데월드타워에 이어 세계 6위로 높은 건물이다.

9•11 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를 새롭게 재건한 제1세계무역센터(One WTC). /사진=송경은 기자
한편 9·11 테러가 발생한 지 9일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중동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위협에 더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알카에다 기지는 파괴됐고, 빈라덴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사살당했다. 시리아·이라크 등 많은 지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신흥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도 사실상 해체됐다.

하지만 여전히 테러리즘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15년 프랑스 파리 테러, 2017년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 폭탄 테러, 지난달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 테러 등 최근까지도 수차례 테러 공격이 이어졌다.

글로벌테러통계(GTD)에 따르면 9·11 테러 이후 전 세계 테러는 이전보다 오히려 10배 이상 증가했다. 또 이슬람이 '테러 종교'로 낙인찍히면서 무슬림에 대한 공격과 차별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9•11 테러로 붕괴된 구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잔해(왼쪽). 오른쪽은 9•11 테러 이전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모습. /사진=송경은 기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 중동 전역으로의 이란 지원 민병대 확산 등으로 수천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테러 진압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미국 역시 지난 20년간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미군 철수를 완료했다. 이에 따라 9·11 테러 다음달 시작된 미국과 아프간 탈레반 간 전쟁은 20년 만에 공식 종료됐고, 테러와의 전쟁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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