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이 취미인 박정민, 생각을 바꾸게 한 '기적' [★FULL인터뷰]
배우 박정민(34)은 좌절이 취미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영화 '기적'은 생각을 바꾸게 한 작품이다.
'기적'(감독 이장훈)은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게 유일한 인생 목표인 준경(박정민 분)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다.
박정민은 '기적'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박정민이 '기적'에 대해 애정이 남달랐던 이유는 바로 '사람들' 때문이었다. 같이 영화를 만들면서 조금 더 돈독해졌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다 보니까 영화에 대한 마음이 저절로 커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배우들이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시나리오였어요. 시나리오가 가진 힘이 따뜻하고 강했어요. 마음을 올리는 요소가 많아서 저 역시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됐죠. 제가 같이 영화를 만들었던 기억이 덧붙여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음이 더 좋더라고요.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는 것 같고요. 긴 소풍을 다녀온 느낌이네요."
극중 박정민은 준경 역을 맡았다. 준경은 기차역이 유일한 인생 목표인 17살 4차원 수학 천재다. 박정민은 30대의 나이로 10대 캐릭터를 연기했다. 사실 나이 때문에 '기적'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고.
"'기적'을 할 수 없었다고 한 이유가 나이였어요. 저는 34살이었고, 준경이는 17살부터 시작하는데 (제가) 두 배를 더 살았어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나는 할 수 있다 치자. 관객분들이 과연 용서해주실까?'라는 고민 때문에 이장훈 감독님한테 '너무 좋은데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러 찾아갔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민이 '기적'을 선택한 건 이장훈 감독의 진심이었다. 평소 박정민은 캐릭터 펭수의 열렬한 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장훈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뺐겼고, 펭수에 결국 넘어갔다.
"첫 시작을 30대 준경이로 시작해서 플래시백으로 가보는 건 어떠냐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께서도 '같은 고민을 하고 계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미팅을 하면서 감독님을 만나 보니까 감독님이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이 영화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는 생각이 들었죠. 조금 조금씩 감독님과 미팅하는 시간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죠. 마지막에 감독님께서 정준경 이름으로 된 명찰이 달린 펭수 인형과 펭수 우산 등 선물을 잔뜩 주셔서 거기에 마음에 녹은 거 같아요. (웃음)"
박정민은 영화 '동주'의 독립운동가 송몽규, '그것만이 내 세상'의 서번트증후군 동생 오진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성소수자 유이 등 매 작품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앞세워 강렬한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는 '기적'을 통해 다시 한 번 연기 변신에 나섰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과 같이 독특한 역할들을 해오다 보니까 '기적' 촬영 초반에 지금 제가 (연기를) 안하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연기를 해야하는데 허전한 느낌이 들었죠. 그런데 이장훈 감독님은 좋다고 하시고, 저는 불만족스러웠어요. 초반에 이러한 순간들이 있었죠. '나 어떡하냐'고 따져볼까라는 마음으로 감독님을 만났어요. 감독님이 두 시간 동안 마치 세상을 바꾸는 15분 강의를 듣는 것처럼 명강의를 듣고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함께 '기적'을 만들어간 이성민, 임윤아, 이수경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박정민이 배운 이성민, 박정민 마음 속의 스타 임윤아, 겁 없이 당돌하게 연기하는 이수경을 언급하며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이성민 선배님은 주변 사람들을 정말 잘 챙겨주세요. 동료 배우는 물론 전 스태프들에게 마음을 다 쓰시는 분이세요. 제가 과거에 극단 차이무(이성민이 활동한 극단 이름) 스태프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배님의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배운다라는 개념으로 같이 했던 것 같네요. 선배님을 구경하면서 감탄했어요."
박정민은 임윤아에 대해 "윤아씨는 제 마음의 스타였어요. 윤아씨한테 제가 어떻게 다가가서 같이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었어요. (촬영장, 사석에서) 만난 윤아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은 내가 하는 장난 등을 재밌게 받아주는 사람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몇 번 장난도 쳐봤어요. 그 덕에 굉장히 가까워졌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촬영장에서 전혀 어색함 없이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죠 급속도로 빠르게 친해졌어요. 연기하면서도 전혀 불편한 게 없었고, 재밌었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윤아랑 더 재밌게 했던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없어진 장면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윤아랑 재밌게 촬영한 부분이 이게 다 였나?' 싶을 정도였거든요. 정말 재밌게 촬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예전부터 이수경을 좋아했다는 박정민은 "이 단어가 어울릴 지는 모르겠지만, 당돌한 연기가 좋았죠. 겁 없이 연기를 하는데, 제가 받아주지 않으면 (이)수경이에게도, 제게도 손해일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친해졌고, 다음에는 또 수경이가 어떤 연기를 할지 궁금하고 기대가 되네요. 실제로 수경이가 제게 하이킥을 날리기도 하는데, 그건 대본에 없던 장면이었지만 제가 받아줬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굉장한 결과주의자였던 박정민이 '기적'을 통해 변화했다. 그는 "항상 예민하고, 스트레스도 많았어요. '기적은' 다시금 제게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과정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남는 것이 과정일 수도 있구나라는 걸 알려줬어요"라며 "예전에는 연기를 하면서 매 테이크마다 좌절을 했었어요. 좌절이 취미였죠. 하하. 예전에는 그 감정에서 제가 안 나오려고 했었거든요. 동굴을 파고 들어가야 좋은 게 나올 거라는 생각이 바뀐 건 최근이에요. '기적'이 그런 생각을 바뀌게 해줬고, 요즘에 찍고 있는 '밀수'를 찍으면서 또 바뀌고 있어요"라고 했다.
박정민은 자신은 어느 정도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 꿈만큼 절실하게 꿔 본 꿈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배우'라고 불러주시니까 어느 정도는 꿈을 이룬 사람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아직 '배우'라는 타이틀을 온전히 흡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인데 제가 몸 담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서 어떤 것을 작게나마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겁이 날 때가 있고, 카메라와 호흡을 잘 하지 못해서 만족스럽지 않은 테이크가 있을 때 마다 경험과 공부가 더 필요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유연함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조금만 좌절하고 건강하게 꾸준히 나아가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강민경 기자 light3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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