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삶에서 실제로 가치가 높고 희소한 것들을 알아보는 법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1. 9. 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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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걸어갈 거리에 영화관이 있다. 가까우니까 아무 때나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서는 이사 온지 1년 반이 지나도록 한 번도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에 살던 도시에는 도심에 큰 공연장이 있었는데 역시 언제든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서는 가본 적이 없었고, 갑자기 떠나게 되어서야 크게 후회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다시 그 도시를 들러서야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냐며 뒤늦게 도시를 구경하고는 왜 정작 그곳에서 살 때는 그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했는지 후회 막심이었다. 그런 후회에 힘입어 어제 처음으로 영화관에 들렀다. 역시 영화관에서 먹는 팝콘이 제일이다. 

왜 뭐든지 가까이 있고 충분히 누릴 수 있을 때에는 시큰둥하다가 나중에 누릴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후회하곤 하는 걸까? 영화관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 기회, 물건 등 다양한 대상들에 대해 적용되는 현상인 것 같다. “무엇이든 잃어버릴 수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듯, 이런 현상들은 '희소성 효과'를 잘 보여준다. 

'설득'에 관한 연구들로 유명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에 따르면 희소성은 두 가지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로 무엇이든지 구하기 어려우면 접근하기 쉬운 것들보다 더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별것 아닌 물건도 '한정'된 기간 동안, 한정된 양만 판매한다고 하면 갑자기 판매량이 두 배 이상 상승한다. 이전에 살던 도시를 마음껏 둘러볼 수 있었을 때는 시큰둥 했다가 다시 여행을 오게 되어 정해진 기간 동안만 볼 수 있다고 하니까 갑자기 도시 구석구석이 다 아름다워 보였던 나의 경험처럼, 같은 자극도 무한정 허용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면 갑자기 그 가치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희소성은 어떤 자극을 누릴 수 있는 자율 또는 통제력을 앗아간다는 점에서도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갑자기 앞으로 구내 식당 사용을 못 하게 된다든가, 휴지 공급량이 크게 줄어들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되면 불안 또는 줄어드는 통제력에 대한 반발심으로 갑자기 구내 식당에 대한 평가가 후해지고, 휴지를 사재기하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조금 더 신기한 현상으로는 사소하거나 심지어 틀린 정보도 공유가 금지돼서 앞으로 접근이 어렵다고 알리면 그 정보는 귀하고 가치있는 정보일 것이라고 보는 시각들이 늘어난다. 금지 서적의 판매가 되려 늘어나거나 틀린 정보를 “아주 어렵게 구한 희귀한 정보”라고 거짓 포장해서 사기를 치는 일이 그 예다. 

실제로 딱히 희소하지 않은 것을 희소하다고 포장하는 것이나 희소하다고 해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 예컨대 내 몸에 난 특이한 모양의 점 같은 것들을 마주할 때는, 진짜 중요한 희소성과 그렇지 않은 희소성을 구분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가치 없는 것을 단지 희소하다는 이유로 가치 있는 것으로 둔갑시키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에서 실제로 가치가 높고 희소한 것들을 알아보는 것일 거다.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서 손을 뻗지 않은 작은 행복들, 기회, 항상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소중히 대하지 않은 사람, 건강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과 오늘, 내 삶 등. 당연하게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실은 언제든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고 나중에 깨달은들 대체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가급적 사라지기 전에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참고자료

Cialdini, R. B., & Griskevicius, V. (2019). Social influence. In R. F. Baumeister & E. J. Finkel (Eds.) Advanced social psychology: The state of the science (pp. 157–177).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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