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감독 "미군위안부는 역사의 유령..목소리 주고 싶었죠"

한미희 2021. 9.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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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영화 '소요산' 연출..올해 베네치아영화제 유일한 한국 초청작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11일(현지시간) 폐막을 앞둔 제78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는 2017년 세계 3대 영화제 중 처음으로 가상현실(VR) 부문(Venice VR)을 공식 경쟁으로 도입했다.

그해 '동두천'으로 베스트 VR 스토리상을 받았던 김진아 감독이 두 번째 VR 작품 '소요산'(Tearless)으로 다시 한번 이 부문에 진출했다. 올해 베네치아 영화제의 유일한 한국 작품이다.

[싸이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폐막과 수상 발표를 앞두고 전화로 만난 김 감독은 "너무 많은 분이 기대를 해주셔서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불과 4년 전에 출발한 VR 부문은 그사이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그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지만, 팬데믹 와중에 온라인으로 진행하다 보니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혼란도 커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감독도 '동두천' 때는 저화질의 액션 카메라인 고프로 8대로 촬영해 일일이 화면을 이어붙였지만, 이번에는 카메라 렌즈가 360도로 달려 VR에 최적화된 핸드볼 공 크기의 카메라를 사용했다.

"'동두천' 때만 해도 아이디어와 연출력으로 승부가 됐는데 지금은 판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유명 VR 스튜디오가 감독을 고용해서 제작하니 마블 영화 같은 어마어마한 작품이 많더라고요. 가난한 집에서 딸내미를 웅변대회에 내보냈는데 잘 차려입은 아이들 틈에 제일 작고 꼬질꼬질한 아이를 보는 기분이랄까요.(웃음)"

'소요산'은 '동두천'을 잇는 미군 위안부 VR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미군 위안부 여성을 감금하고 치료했던 소요산의 낙검자 수용소 '몽키 하우스'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 '소요산' [싸이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한미군의 성병 감염률이 70%를 넘어섰던 1970년대, 기지촌 여성들은 2주에 한 번 성병 검사를 받은 뒤 검사 결과가 표기된 번호표를 가슴에 달아야 했고 검진을 통과하지 못한 여성들이 감금돼 강제 치료를 받은 곳이 몽키 하우스다.

이곳에서 과다한 용량의 페니실린 주사를 맞은 여성들은 돌연사하기도 했고, 도주하려고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하기도 했다.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는 2004년에야 문을 닫았다.

영화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는 수용소라는 공간과 그 공간 안에 존재했지만 그 존재를 스스로 부인하거나 타인에게 부정당했던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살려낸다. 김 감독은 이를 "역사 속의 유령"이라고 표현했다.

"주변 분들에게 '저 건물'에 대해 물으면 '무슨 건물?' 하고 없는 것처럼 말씀하세요. 존재하지만 이야기되지 않아서, 인정해주지 않아서 존재하지 못하는 거죠.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분들도 이해되고 그래서 마음이 아파요. 역사 안에서 말해지지 못하는 장소, 존재에 목소리를 주고 싶었습니다."

영화 '소요산' [싸이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새로운 기술에 별 관심이 없었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김 감독이 VR 작품을 시리즈로 만들며 애를 쏟고 있는 것은 VR이 "오랫동안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한 미군의 범죄를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어 시나리오도 썼지만, 착취당하고 살해당하는 여성은 주인공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자극적인 장면으로 다시 착취와 폭력을 저지르는 일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던 그는 "VR을 접했을 때 신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주한미군이 벌인 끔찍한 성범죄를 소재로 한 '동두천'은 참혹한 피해자의 이미지나 사건을 보여주는 대신, 관객이 범죄 현장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더욱 생생한 공포를 안겼다.

"핵심은 몸의 부재였어요. 사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거죠. 이미지의 재현이나 사건의 착취 없이, 여성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고 개인의 주체화된 경험이 가능하니 그걸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이어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VR에 증강현실(AR)과 메타버스까지 접목해 좀 더 다각적이고 포괄적인 프로젝트가 될 예정이다.

김 감독은 "정보를 제공하는 건 일반 다큐멘터리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감각적으로 와닿는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김진아 감독 [싸이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대(UCLA) 종신 교수로 영화를 가르치면서 감독으로서 차기작을 꾸준히 준비하고 있지만, 최근 미국에서 아시안 혐오 범죄와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동시에 늘어나면서 관련 콘텐츠를 직접 쓰기도 하고 컨설팅을 하느라 더욱 바빠졌다.

가장 힘을 쏟는 일은 미군 위안부에 대한 장편 극영화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결국 하게 됐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배경으로 5명의 인생을 따라가는 큰 작품이 될 예정이다.

"피해자가 여성인 이야기를 하면서 피해자의 시점이 배제된 방식으로 서사를 꾸며가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저는 약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게 예술의 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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