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한 82명의 경찰들.."아프다" 말도 못했다
현직 경찰들 "업무도 힘들지만..폐쇄적인 조직문화 문제"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현직 경찰관들이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근 4년간(2017년~2020년) 82명의 현직 경찰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이들 중 누구도 경찰청이 운영하는 자살예방 상담 프로그램을 이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현직 경찰관들의 자살예방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2020년 회계연도 결산 예비심사를 진행하면서 경찰청이 운영하고 있는 '마음건강증진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시정요구안을 의결했다. 우울증·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해당 프로그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은 지난 2012년부터 직무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경찰관들에게 심리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마음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전국 18곳에 설치된 '마음동행센터'에서 무료로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이외에도 경찰청과 업무협약을 맺은 전문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거나 상담사가 직접 경찰서로 방문하는 긴급심리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경찰관 자살자 수는 줄지 않았다. 2017년 22명이었던 경찰관 자살자 수는 2018년 16명으로 줄었으나 2019년 20명으로 다시 증가해 2020년에는 24명을 기록했다. 더욱이 자살자 중에 마음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람은 지난 4년간 1명도 없었다.
이에 대해 행안위는 "직무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경찰관에게 심리 상담을 제공하여 우울증·자살 등을 예방하는 마음건강증진 프로그램의 운영에도 불구하고 최근 4년간 경찰관 자살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라며 "자살 경찰관 중 마음건강프로그램을 이용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자살한 경찰관과 함께 근무한 경찰관들도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달 19일 국회 열린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살자, 자살하신 동료 경찰관 분들이 한분도 마음건강증진 프로그램의 혜택을 못 봤다라고 하는 부분은 선별을 못 해냈다는 애기"라고 회의에 참석한 김창룡 경찰청장을 질타했다.
당시 김 청장은 "저희들이 안 그래도 직무적성검사를 한 다음에 고위험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마음동행센터라든지 건강증진프로그램을 거치도록 많이 노력을 하고 있다"며 현재 5년에 한번씩 진행하는 직무적성검사에 대해 "촘촘하게 설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찰관의 자살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되어 왔다. 매년 국정감사에서도 단골 주제였다. 경찰 공무원의 경우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체력이나 정신력을 측정해 선발한 인력들이지만 일반 공무원들과 비교했을 때 자살률이 두배 이상 높았기 때문이다. 관련 문제가 제기될 때 마다 경찰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자살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각종 스트레스에 힘든데…폐쇄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
이런 상황에 대해 현직 경찰들은 Δ과중한 업무 Δ폭력에 노출된 직업 환경 Δ과도한 사회적 감시Δ약화된 공권력 등 때문에 경찰들이 높은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살인, 강도, 교통사고 등 끔찍한 사건 현장을 계속해서 목격해야 하는 직업 특성에 더해 평생을 주·야간 근무를 번갈아 해야 하는 규칙적이지 못한 근무환경까지 겹치면서 경찰관들은 근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 자체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표정목 김해서부경찰서 경장은 "경찰을 하지 않았으면 평생을 보지 못했을 것들은 본다. 저는 경찰이 이렇게 시신을 많이 볼 지는 몰랐다"라며 "자살 사건의 경우 수사를 하면 유서 같은 것도 직접 접하게 되는데 감정적으로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다양한 시민들을 대하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충도 경찰관들은 홀로 감당해야 했다. 표 경장은 "제복 입은 공무원이라는 특성 때문에 늘 감시를 받는다"라며 경찰관이 고의가 아닌 실수를 하더라도 과도한 비판과 질책을 받고 있어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또 그는 경찰들이 현장에서 악성 민원인의 괴롭힘·협박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경찰 조직이 이를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표 경장은 "경찰관이 이건 정말 해도 해도 안돼서 체포라는 강제 수사를 진행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독직폭행으로 인한 고소다. 저도 최근에 비슷한 것을 당해서 결국 무혐의로 불기소를 받긴 했는데 형사로는 안 되니 민사로 소송을 건다. 원래는 국가배상으로 가야하는데 개인에게 민사로 소송을 걸어 괴롭히는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경찰관은 '현장 경찰관들이 근무 중에 문제가 생겨서 고충을 생겨도 국가가 경찰관들을 보호해 주지 않기 때문에 경찰관들이 당당히 업무수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적극적으로 업무수행을 하다가도 실수를 하게 되면 그 책임을 개인이 온전히 지기 때문에 경찰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움츠려들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직 경찰관들은 '낙인효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내부 상담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경찰 조직이 개개인의 성과를 강조하고 평가나 진급에 이를 반영하는 경쟁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보니 직원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현수 충주경찰서 경위는 "경찰의 조직 문화는 진급 경쟁도 있고 자기 자신을 함부로 들어낼 수 있는 문화가 아니다. 세평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 세평이 인사 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속마음이나 고민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약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경찰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경찰공무원 복지 실태조사(2018년 조사)에서 응답자 중 37.6%가 '사건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이 있다'고 응답했지만 이중 86.1%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치료경험이 없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정 경위는 이런 경찰의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직원들 사이에 소통이 잘 이뤄져야 하지만 직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구가 미비한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최근 경찰 직장협의회가 발족됐지만 각 경찰서 별로 구성돼 전체 현장 경찰관들의 목소리를 모으기에는 한계기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경찰청 관계자는 "(직원 자살과 관련해) 종합계획을 세워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라며 "2014년부터 운영한 마음동행센터가 지난해 들어서야 전국 18개소 구축을 완료했으며 이용률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상담 인력이 부족한 문제가 있지만 충원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며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서 민간 상담사들과도 업무협약을 통해 상담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경찰은 현직 경찰관들이 낙인효과를 우려해 적극적으로 조직 내부에 정신적인 어려움을 털어 놓기 어려워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상담을 받는 등의 사실은) 알 수도 없고 관리도 하지 않는다. 철저히 비밀보장이 이뤄지고 있으며 정신 병력이 있다거나 치료사실이 있다는 내용 등이 인사 자료 등으로도 사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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