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서 못샀던 장외주식.. "100만원만 있어도 마켓컬리·토스 주주 될 수 있다"

노자운 기자 2021. 9. 11.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엔젤리그' 오현석 대표이사

비상장 주식 거래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과거 장외 주식 시장은 기관과 전문 엔젤투자자(초기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경영에 도움을 주는 개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됐으나, 언제부턴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저변확대가 가속화하고 있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해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비상장주식의 타 증권사 간 거래 규모는 약 20억주에 달했다. 지난해 연간 거래 규모가 총 30억주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들어 장외 주식 시장이 괄목할 성장을 이룬 셈이다.

현재 장외 주식의 거래는 주로 비제도권에서 이뤄지고 있다. 20억주 가운데 1억3000만주만이 금융투자협회 K-OTC를 통해 거래됐고, 나머지는 대부분 증권플러스 비상장, 38커뮤니케이션 등 장외 주식 플랫폼에서 매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현석 엔젤리그 대표이사. /엔젤리그 제공

엔젤리그 역시 비제도권의 장외 주식 거래 플랫폼이지만, 증권플러스 비상장 등 기존 업체들과의 차별화를 꾀한다. 엔젤리그는 특히 ‘접하기 어려운’ 종목들을 살 수 있는 플랫폼을 추구한다.

기업 가치가 3조원에 달하는 중고품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 몸값 8조원의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운영사),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 등에 투자할 수 있다. 기존 장외 주식 거래 플랫폼에서는 살 수 없는 종목들이다. 또 최소 거래 단위가 수천만원에 달하는 기존 플랫폼과 달리, 100만원만 있어도 이른바 ‘유니콘(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는 스타트업)’ 주주가 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엔젤리그 사무실에서 오현석 대표이사를 만났다. 오 대표는 엔젤리그를 “현금이 필요한 스타트업 임직원과 비상장주를 사고 싶은 투자자의 연결 창구”로 묘사하며 “대체 투자 시장을 혁신하고 싶어 엔젤리그를 창업했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엔젤리그를 이용하는 주 연령대가 20~30대라며, 이 같은 통계가 “직접 정보를 수집해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하려는 젊은 세대의 성향을 잘 반영한다”고 말했다.

엔젤리그를 개설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다 2013~17년 GS 그룹에서 벤처 투자를 했다. 그러다 2018년 블록체인 기술에 매료돼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디블락이라는 투자 회사였는데,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상태다.

엔젤리그는 이듬해인 2019년 10월에 창업했다. 나를 포함해 총 4명이 공동 창업했다. 처음에는 온라인 주주 명부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대체 투자 시장을 혁신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자고 마음먹었다. 대체 투자 시장 가운데서도 특히 비상장 주식 시장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스타트업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통일주권(예탁과 증권 계좌 간 위탁 거래가 가능한 주식)이 발행되기도 전 초기 단계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주로 부자들의 투자 대상이었던 비상장 주식을 작은 금액으로도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 회사의 목표다.”

엔젤리그에서 살 수 있는 주식은 어떤 경로로 유통되는지.

“회사 임직원들이 보유 중인 스톡옵션이나 우리사주를 매물로 내놓는 것이다.

보통 스톡옵션을 실현해 현금화하기 위해서는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단계까지 가려면 대부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스타트업에서 수년 간 열심히 일했는데 IPO나 M&A만 바라보며 마냥 기다리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 아닌가. 그 사이 결혼을 하거나 아이가 아프다든가, 큰돈이 들어갈 일이 생길 수 있다.

엔젤리그는 스톡옵션을 보유한 사람들에게도 주식을 팔아 현금화할 통로를 제공한다. 스톡옵션의 현금화가 쉬워지면,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더 좋은 인재를 많이 영입할 유인이 생긴다.”

스타트업 임직원들의 세컨더리 마켓(구주 유통 시장)을 열어준 것인가.

“우리가 영업을 통해 구주를 사온다든가 매매를 직접 중개하는 것은 아니다. 스톡옵션을 팔고자 하는 사람이 엔젤리그에 보유 주식을 등록하면, 주식을 사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매수 희망을 밝히고 매매가를 협의한다.

가격 협의가 이뤄지면 매도자는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내놓고, 매수 희망자들은 조합을 이뤄서 수천만원~수억원 어치 주식을 나눠 산다. 벤처캐피털(VC) 여러 곳이 모여 투자하듯 ‘클럽 딜’을 하는 것이다. 조합에 참여해 주식 일부를 사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는 소액으로도 유망 기업의 주주가 될 수 있다.”

매도인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부르면 제재하기도 하는지.

“우리가 직접 제재하지 않아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면 매매가 진행되지 않는다. 합리적인 가격인지 여부는 투자자들이 알아서 판단한다. 엔젤리그에서는 해당 기업에 대한 다양한 회계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투자자들의 객관적인 판단을 도울 뿐이다.”

엔젤리그를 통해 스톡옵션을 판 사람들이 차익을 얼마나 얻었는지도 파악이 되나.

“주식 매도자들은 스톡옵션을 행사한 뒤 주권 미발행 확인서나 주주 명부 등의 증빙 서류를 엔젤리그에 제출할 뿐이다. 스톡옵션의 행사 가격은 우리 쪽에서 알 수가 없다.”

주식 매수자가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는 얼마인가.

“조합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1인당 10만원을 받고 있다. 10만원의 수수료가 비싸다고 느끼는 이용자들도 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용자도 많다.”

조합을 통해 주식을 산 사람들은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어떻게 하나.

“해당 기업이 상장을 할 경우에는 주식을 각 투자자에게 다시 돌려준다. 상장 전 제3자에게 주식을 팔아 엑시트할 수도 있다. 주식을 사겠다는 제3자의 제안이 들어오면, 조합 참여자들끼리 전자 투표를 해서 매도 여부와 매매가를 결정한다. 이 같은 방식의 블록딜(대량 매매)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엔젤리그에 매물로 올라온 비상장 주식. 800주를 7600만원에 내놨다. 매수자들은 조합을 결성해 1인당 100만~500만원씩 모아 주식을 살 수 있다. /엔젤리그 모바일 앱

이용자의 주 연령층이 어떻게 되며, 건당 투자 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대다수가 20~30대다. 보통 100만~500만원을 투자하며, 건당 투자 금액은 200만원이 가장 많다. 연령대에 따라 선호 종목에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

올해 상반기 투자 동향을 분석해보니, 전 연령대에서 자율 주행 기술 스타트업 스트라드비젼,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주식이 많이 팔렸더라.”

20~30대 투자자가 많아진 이유가 무엇일까.

“젊은 세대의 투자 패턴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나는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증권사에서 펀드를 샀는데, 얼마 안 가 30% 손실을 봤다. 문제는 손실을 보고도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이 심각해 나 같은 일반 투자자들은 금융 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할 수 없었다.

지금은 IT 기술이 많이 발달하며 정보 비대칭 문제가 크게 해소됐고, 개인 투자자들도 금융 기관에 일임하지 않고 모바일로 직접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젊은 세대는 직접 정보를 수집해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엔젤리그에서 직접 비상장 주식을 사는 것 역시 이 같은 2030 세대의 투자 패턴을 반영한다.”

젊은 세대의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의 신조어)’ 투자가 폐해를 낳는 경우도 많다.

“비상장 주식은 ‘원금 손실’을 넘어서 투자금 대부분을 잃을 가능성도 있는 위험 자산이다. 보유한 자산을 모두 투자해 비상장 주식을 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일부는 예적금 같은 안전 자산에 투자하고, 손실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은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험 자산에도 직접 투자하며 경험을 쌓아야 한다.

또 젊은 세대는 대체로 주식 투자를 통해 단타를 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데, 엔젤리그에서 조합 형태로 비상장 주식을 사면 어쩔 수 없이 장기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20~30세대가 엔젤리그를 통해 장기 투자를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도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자들에게 친화적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쉽고 편한 이용자경험(UX)을 만들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다. 몇 번의 터치를 통해 투자 진행이 쉽게 되도록 간편하게 구성했다. 젊은 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배달의 민족’이나 ‘쿠팡’ 같은 서비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을 그대로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용자의 증가 추이는.

“지난해 3월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뒤 이용자 수가 매달 60%씩 늘고 있다. 현재는 전체 조합원이 5500명이며, 올해 안에 1만명을 기록할 수 있을 전망이다.”

외부 투자도 받았는지.

“더벤처스와 퓨처플레이, 팁스(TIPS·민관 공동 창업자 발굴 육성) 프로그램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투자 금액이 크지는 않다. 추가 투자도 유치할 계획이다.”

거래 대상 범위를 상장 주식까지 넓힐 계획도 있나.

“상장 주식의 매매까지 확장한다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증권사 라이센스를 취득해야 한다. 아직은 너무 먼 얘기다.”

요즘 비상장 주식이 전체적으로 고평가됐다는 지적도 많이 나온다.

“판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주변에 크래프톤의 비상장주를 가진 사람이 많았는데, 처분할 방법이 없어 고민을 많이 하더라.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공모가 기준으로 불과 몇 년 사이에 기업 가치가 3~4배가 올랐다.

그렇다면 만약 몇 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크래프톤 주식을 살 수 있을까. 그 가격도 비싸다고 생각해 못 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기업 가치의 고평가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문제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