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식물에게 듣는 노화의 비밀

이병철 기자 2021. 9.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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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혜련 DGIST 뉴바이올로지전공 교수
 

“동물과 식물은 얼마나 닮았을까요. 그동안 적어도 노화 과정만큼은 동물과 식물이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동식물을 넘어 모든 생물에 적용되는 노화의 비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혜련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뉴바이올로지전공 교수는 식물을 통해 생명체가 가진 노화의 비밀을 밝혀내고 있는 생명과학자다. 식물을 통해 생명 전반의 노화를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은 식물과 동물의 노화를 관통하는 공통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면서다. 8월 6일 DGIST 식물분자커뮤니케이션 연구실에서 우 교수를 만났다.

동물과 식물 모두 늙는다

생명체의 노화는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크게 외부 환경에 의한 영향인 외재적 요인과 DNA, 호르몬 등에 의한 내재적 요인으로 나뉜다. 그중 노화의 대표적인 내재적 요인으로 알려진 것은 텔로미어(telomere)의 단축이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단의 DNA 영역으로 세포분열을 거듭할수록 짧아지며 세포 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에서 텔로미어 단축이 노화의 원인은 아니다. 적어도 우 교수의 연구 분야인 식물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우 교수는 “동물에서는 텔로미어 단축이 노화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받지만, 식물에서는 텔로미어와 노화의 연관성이 작다”며 “식물은 동물과 달리 특별한 세포만 분열하고, 텔로미어의 길이를 유지하는 알려지지 않은 기전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최근 우 교수는 동물과 식물의 노화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를 찾고 있다. 그간 동물학자와 식물학자는 각각 자신의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노화를 연구해 왔다. 우 교수는 동물의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진 요소가 식물의 노화에도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동물에서 노화의 원인으로 밝혀진 DNA 안정성이 식물에게도 중요한 노화 요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DNA의 구조는 DNA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생물학적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동물에서 DNA 구조의 손상은 세포의 기능과 노화에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우 교수팀은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의 잎에 DNA 이중 가닥 절단(DSBs)이 생기도록 했다. 그 뒤 이를 수리하는 효소(ATM)의 활성과 노화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ATM의 활성이 떨어지면 잎이 노랗게 변하는 등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DSBs가 식물의 노화에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의미다. doi: 10.1111/nph.16535 

우 교수는 “DNA 안정성이 동물과 식물에서 노화의 공통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밝힌 첫 번째 연구”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DNA 구조 손상과 노화가 연관됐을 것이라 생각하고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DNA 안정성을 감소시키는 또 다른 기전인 ‘DNA-단백질 교차연결(DPC)’이 식물에서도 노화를 조절할 가능성을 찾고 있다. 우 교수는 “DPC는 DNA의 전사와 복제 등을 방해하는 기전으로 이미 동물과 균류에서 질병, 수명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식물에서도 분명 노화에 어떠한 형태로라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식물이 받는 스트레스도 노화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식물에게는 외부 환경 변화가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기온이 상승하거나 토양의 염분, 일조량이 변해도 식물은 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외부 스트레스에 의한 노화를 조절할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우 교수는 “최근 기후변화는 각종 작물의 재배한계선을 북상시키는 등 식물생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식물에서는 생장하며 열매를 맺고 성숙시키는 과정을 노화로 해석하는 만큼 작물의 수확량도 노화에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전 세계에서 가뭄과 홍수, 해수면 상승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며 작물의 수확량이 급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미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가 시작됐다는 경고도 나온다. 우 교수와 같은 식물학자들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노화를 이해하는 것은 식량 위기를 해소할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생명체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을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생명체와 노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패러다임도 바뀔 수 있다. 

“그간 동물의 노화는 막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인식이, 식물의 노화는 열매를 맺는 등의 이유로 의도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관점이 있었어요.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동물과 식물의 노화를 함께 이해하면 노화를 바라보는 더욱 다양한 관점이 생겨날 것입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9월호, [DGIST@융복합 파트너] 식물에게 듣는 노화의 비밀

[이병철 기자 alwaysa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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