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윤석열, 사느냐 죽느냐

최재혁 사회부 부장대우 2021. 9. 1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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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한 ‘고발 사주(使嗾) 의혹’은 작년 ‘채널A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둘 다 2020년 4·15 총선 직전이 배경이다. 전자는 윤석열 당시 총장이 대검 중간 간부를 통해 야당에 여권 정치인 고발을 사주했다는 것이고, 후자는 윤석열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채널A 기자가 유착해 유시민씨 비리 의혹을 제기하려 했다는 것이다. 두 사건 모두 반(反)윤석열 성향이 강한 인물의 제보를 언론이 보도한 다음, 여권의 총공세와 친정권 간부들이 장악한 검찰이 나서는 식이다. 다만, 이번 경우 공수처가 나선 것이 다른 점이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회관에서 열린 한국교총 대표단과의 대화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뉴시스

‘채널A 사건’은 정권 입장에서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한동훈은 기소도 못 했고 채널A 기자의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팀 부장검사는 휴대전화 유심칩 압수수색 현장에서 한동훈을 깔고 앉았다가 독직 폭행으로 법정에 서고 있다. 그에게 1심 유죄가 선고된 것은 여권과 친여 매체가 합작한 ‘검·언 유착’ 프레임의 붕괴를 상징한다. 증거와 정황은 오히려 ‘권·언 유착’을 가리켰으나 검찰은 당사자들을 수사하지 않고 감쌌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이 채널A 사건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검찰총장 윤석열’이 현직일 때 채널A 사건의 처리를 놓고 추미애 법무장관과 일군(一群)의 친정권 검사들과 공방을 벌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전투가 지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싸움의 무대는 국민의힘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윤석열을 향한 공세가 같은 진영 내부로부터도 나오는 대선 판이다.

이번 ‘고발 사주 의혹’은 전형적인 정쟁(政爭)적 이슈인 동시에, 여권으로선 문재인 대통령이 아꼈던 조국을 수사로 망가뜨리고 중도층이 등 돌리게 한 윤석열에 대해 구원(舊怨)을 푸는 의미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9일 당선된 뒤 열흘 만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특검팀에 파견 중이던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했다. 처음에는 윤석열을 바로 검찰총장으로 발탁하려 했다는 얘기도 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7월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하고 한 달 뒤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지명했다.

검찰 관련 보고서는 밑줄을 쳐가며 읽는다는 문 대통령은 ‘조국·윤석열 조합’으로 검찰 조직의 완벽한 제어를 구상했을 것이다. 윤 전 총장이 ‘조국 일가 수사’로 그 그림을 깨버리지 않았으면 지금 여당의 대선 후보 경쟁 구도는 완전히 달라졌을 수 있다.

그런 만큼 윤 전 총장에 대한 파상 공세는 집요하게 이어져 왔다. 윤 전 총장이 대선 도전을 선언한 지 사흘 뒤 그 장모는 2013년 투자했던 병원의 요양급여 부정수급 사건의 1심에서 법정 구속됐다. 2심 재판부는 1심의 유죄 판단이 명확하지 않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15개월 넘게 수사를 받는 윤 전 총장 아내도 박범계 법무장관의 고교 후배인 현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소를 밀어붙일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 과거 입건되지 않았거나 윤 전 총장 국회 청문회 때 여당 의원들이 방어했던 사안이었지만 여권과 검찰은 이를 윤석열 흠집 내기에 재활용 중이다.

윤 전 총장은 ‘고발 사주 의혹’을 정치 공작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직 검찰총장이 부하 검사를 시켜 야당에 자기 아내를 공격하는 여권 정치인과 기자를 고발하도록 작업했다는 ‘고발 사주’ 프레임이 상식적이진 않다. ‘윤석열’이라면 이를 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야당에 약점이 잡힐 위험을 감수하고 그런 지시를 했다? 또한 총선 국면에 쏟아지는 고소·고발의 홍수 속에 무슨 효과가 있다고 선거를 12일 앞두고서 그런 일을 벌이기 시작했겠느냐는 의심도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고발 사주 의혹’은 가족이 아니라 윤석열 본인이 표적이란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언론이 강제 수사를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공수처의 윤석열 입건 이유가 황당하지만, 공격하는 쪽은 그런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윤석열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이 고비를 넘지 못한다면 대권 도전이 좌절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공수처가 입건하려면 하라”는 윤석열의 초강수가 통하더라도 진짜 승부는 남아 있다. 윤 전 총장은 ‘586 운동권 적폐 세력의 재집권을 막겠다’는 걸 정치 투신의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윤 전 총장이 ‘정권 교체’ 열망을 충족해줄 비전과 정책이 준비돼 있는지 의문이라는 국민이 늘고 있다. 권력에 들이받는 ‘야생마’ 윤석열이 몇 달 만에 닳고 닳은 기성 정치인처럼 돼 버렸다는 이들도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고발 사주 의혹’과는 견줄 수 없는 진짜 위기가 윤석열에 닥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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