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수도 ‘평냉’ 마니아… 냉면은 밋밋하지만 계속 찾는 포크음악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1. 9. 1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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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평양냉면 에세이 낸 음악평론가 배순탁
평양냉면 에세이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를 펴낸 배순탁 작가는 "라디오와 평양냉면은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맛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했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TV와 라디오 무대 뒤에서 일하는 방송작가는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순탁(44)은 드물게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방송작가다. 인지도의 척도랄 수 있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1만5000명이 넘으며, 공동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무비건조’ 구독자는 3만명이 넘는다.

음악평론가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08년부터 13년째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배캠)’ 작가로 일해왔고,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마이리틀 텔레비전’ 등 TV 예능에도 출연해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MBC 라디오 ‘배순탁의 B사이드’ DJ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그리고 100장의 음반’(예담), 1990년대 음악을 다룬 ‘청춘을 달리다’(북라이프) 등 저술 활동도 왕성한 그가 최근 평양냉면 에세이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세미콜론)를 펴냈다. 그는 소문난 평양냉면 마니아. 즐겨 찾는 냉면집 중 하나이자 일터에서 가까운 서울 상암동 ‘배꼽집’에서 배 작가를 만났다.

◇맛없어 화났던 ‘평냉’ 첫 경험

-평양냉면을 언제 처음 ‘영접’했나.

“2006, 2007년쯤? 2000년대 중후반 직장 생활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다. 직장 상사분이 ‘을밀대’에서 사주셨다. 마침 일이 있어서 근처에 갔다가 먹었다.”

-처음 먹어본 평냉 맛이 어떻던가.

“진짜 맛없었다. 배고파 죽겠는데 화가 났다(웃음).”

-책 제목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는 냉면 사줬던 직장 상사가 해준 말인지.

“그렇지는 않다(웃음).”

배 작가는 자신의 평냉 첫 경험을 이렇게 썼다. “평양냉면 애호가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게 하나 있다. 처음엔 진짜 별로였다는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경험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평양냉면에 푹 빠지게 되었다는 거다. 나도 그랬다.”

-맛없었다면서 자꾸 생각났다니 신기하다.

“평냉은 술 좋아하는 분들이 적응하기 유리한 면이 있다. 해장용으로 최적화된 음식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부모님이 이북분들인가.

“전혀 아니다. 2007년부터 MBC에서 일했는데, 방송국에는 맛집 찾아 다니는 분들이 많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정통 평냉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평양냉면 마니아로 알려졌는데, 얼마나 자주 먹나.

“일주일에 한두 번은 무조건 먹는다. 겨울 여름 계절 상관없이.”

◇냉면에는 王道가 없다

주문한 냉면이 나왔다. 배 작가는 식초나 겨자를 치지 않은 국물을 맛보더니 삶은 달걀 반쪽을 먼저 먹고는 면을 집어 올렸다. 그가 “이 집에선 이게 냉면과 최고의 짝꿍”이라 꼽은 돼지양념갈비도 나왔다. 그는 “‘을지면옥’에서는 편육, ‘봉피양’과 ‘배꼽집’에서는 돼지갈비, ‘을밀대’는 수육, ‘우래옥’은 불고기”를 냉면에 곁들인다고 했다.

-소갈비로도 유명한 집인데 왜 돼지갈비를 고집하나.

“이게 소고기보다 좋더라. 입맛이 싸서 그런지(웃음).”

-우래옥 불고기가 너무 비싸서 옆 테이블에서 굽는 냄새를 코로 맡기만 하면서 냉면을 먹는다고 썼던데, 실화인가. 자린고비도 아니고(웃음).

“그렇게 한 적이 많다. 불고기까지 먹기엔 경제 상황이 애매했던 과거에 특히 그랬다. 요즘도 둘이서 냉면(1만4000원) 하나씩에 불고기 2인분(1인분 150g 3만5000원) 먹으면 10만원 가까이 나와 여전히 부담스럽다.”

배 작가는 책에 이렇게 썼다. “우래옥 불고기, 진짜 맛있는데 높은 가격 대비 정말 쥐꼬리만큼 나온다. 내 돈 주고 먹어본 경우가 몇 없다. 그리하여 나의 전략은 다음과 같다. … 냉면을 입안 한가득 넣고, 공기 중에 은은하게 둥둥 떠다니는 불고기의 향을 코로 맡는다. 사리 추가는 필수다. 불고기 대신 사리 추가를 통해 마치 불고기도 먹는 것처럼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까닭이다.”

서울 상암동 '배꼽집'의 평양냉면과 한돈 참갈비./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식초는 안 치나.

“식초를 좋아하지 않는다. 달걀도 나는 제일 먼저 먹지만, 부숴 먹든 어떻게 먹든 아무 상관없다.”

-’면스플레인’(면+explain)이라고 해서 냉면은 이렇게 먹어야 한다, 저렇게 먹으면 안 된다고 설명하는 마니아가 많다.

“사람 미각이 제각각인데 자기 입맛을 강요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다. 처음에는 냉면 국물이 엑기스를 뽑아낸 듯한 느낌이라 건드리면 안 되겠다, 온전히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평냉 드셨던 어르신들을 보니 전혀 아니더라. 식초·고춧가루 뿌리거나 겨자를 좋아하는 등, 별의별 분들이 다 계시더라.”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란 분들도 있다.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여름에 안 먹게 된 탓이 크지 않을까. 여름에 먹을 수 있었으면 먹었을 거다. 평양냉면의 왕도를 고집하는 태도가 내 눈에는 순수주의의 산물로 보인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스스로 순수함을 확신하며 내세우는 사람들을 대체로 경계한다. 순수의 강요는 결국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배척하는 논리로밖에 작동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 봄이어도 좋고, 가을이나 겨울이어도 좋다. 평양냉면이 아닌 다른 냉면을 먹는다 해도 관대하신 냉면의 신(神)께서는 흡족한 표정으로 그대를 내려다보고 계실 것이다. 냉멘.”

음악평론가 겸 방송작가 배순탁이 쓴 평양냉면 에세이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세미콜론

-면스플레인에서 자유로워진 계기가 있나.

“음식·미각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그 결과 인간 미각은 그리 신뢰할 게 못 되더라. 사람 입맛은 음악 취향만큼이나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냉면을 가장 맛있게 먹은 건 겨울이었다고 썼다.

“춥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속까지 뻥 뚫리는 느낌이 있다. 사람도 별로 없고 한산해 좋기도 하고.”

겨울에 냉면 한 그릇을 비운 경험을 그는 이렇게 썼다.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섰는데 매서운 바람이 몸속에서부터 훅 치고 올라온다. 깨끗한 겨울 공기가 내장 곳곳을 적시는 듯한 기분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작은 정화 의식을 치르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걸 ‘솔 푸드(soul food)’라고 불렀다.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비싸다고? 평냉은 억울하다

-평냉은 왜 그렇게 비싸고 매년 가격이 오를까.

“첫째, 기사에 제일 비싼 냉면들만 소개되는 탓이다. 1만원짜리와 1만원 이하 냉면집도 꽤 있는데 비싼 냉면집들만 딱 집어 기사화하니 그렇게 느껴진다. 둘째는 실제로 냉면이 고기, 메밀 등 재료 값이 비싼 데다 메밀로 면을 뽑기가 굉장히 힘든 기술이자 고된 노동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가격이 이유 없이 오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독 한식은 싸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이탈리아 파스타는 한 접시에 2만원 넘는 게 허다하다. 우습지 않은가.”

-배철수 DJ도 냉면을 좋아하나?

“배 선생님 아버지가 이북분이라 어린 시절부터 우래옥을 출입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 팀(배철수의 음악캠프 제작진)도 일 년에 한 번은 꼭 우래옥에 간다.”

-라디오는 평냉과 닮은 구석이 많다고 썼다.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맛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점도 있다. 평양냉면은 여전히 ‘대세’인 반면 라디오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하하!”

-배캠(배철수의 음악캠프)은 노포(老鋪)일까.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올해가 31년째다.”

-냉면을 음악에 비교한다면.

“듣자마자 직관적으로 딱 좋은, 훅이 팽팽하게 살아있는 노래는 절대 아닌 것 같다. 적응이 필요한 음악, 밋밋하지만 계속 찾게 되는 포크음악과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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