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인공들, '와인 병나발' 부는 이유 있었네

허윤희 기자 2021. 9. 1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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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국민 술' 넘보는 와인
맥주 제치고 수입 1위
지난 7일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한 여성이 와인을 고르고 있다. 롯데마트는 최근 서울역점의 와인 매장을 2배가량 넓혔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직장인 정모(37·서울 광진구)씨는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와인 한 병씩 구입하는 취미가 생겼다. “예전엔 회식도 술자리도 많아서 집에서는 술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는데, 코로나 이후 저녁 약속이 거의 없어 남편과 와인잔 기울이며 하루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집에서 독한 소주를 마시긴 싫고, 맥주는 칼로리가 높아 부담돼요. 대화하면서 즐겁게 마시기엔 와인이 딱 좋더라고요.”

코로나가 술 문화까지 바꿨다. 와인이 ‘혼술(혼자 마시는 술)’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트렌드의 최고 수혜주(酒)로 등극하면서 이제 ‘국민 술’ 자리까지 넘본다. 관세청은 지난해 와인 수입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전통적 수입 주류 1위였던 맥주를 제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전년보다 27.3% 증가한 3억3000만 달러(약 3843억원). 수입량으로 보면 5400만L, 와인병(750mL) 기준으로 7300만 병에 달하는 규모다. 반면 맥주는 2억2700만달러로 전년보다 19.2% 줄었다. 관세청은 “코로나 시대에 회식보다 혼술, 홈술 문화가 자리 잡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주류가 인기를 끌면서 와인 수요를 증가시켰다”며 “맥주는 일본산 수입이 줄고 국산 수제 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수입액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올해 들어 와인 수입 속도는 더 빨라졌다. 7월까지 와인 수입액은 3억2500만달러(약 3784억원)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입액에 육박했다. 유통업계에선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 와인 판로가 늘면서 와인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는 영향이 크다고 본다.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1만원 이하 저가 와인을 선보이며 가격 파괴에 나선 데다가 편의점을 통해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것. 1년 전부터 혼술로 와인을 즐긴다는 대학원생 김모(27·경기 분당)씨는 “집 근처 편의점에서 저렴하고 산뜻한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며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넷플릭스 보며 마시는 게 일상이 됐다”고 했다.

그동안 국내 주류시장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주류 유형별 시장 점유율은 맥주 45.6%, 소주 37%, 탁주 13.4%, 기타 4%. 와인은 ‘기타 4%’ 안에 위스키, 사케 등과 함께 포함됐을 정도로 ‘특별한 날 마시는 고급 술’이란 인식이 컸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주인공 지선우(김희애 분)가 와인을 병째 마시는 장면.

정하봉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은 “요즘엔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들도 소주보다 와인 마시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올 정도로 와인이 대중화됐다”며 “다른 주종과 달리 와인은 하늘에 떠있는 별만큼 많다고 할 정도로 종류, 가격대가 다양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요즘 소비 경향에도 맞는다. MZ세대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기가 마신 와인 사진을 올리고, 남들이 마시지 않은 종류를 점점 더 찾게 되면서 흥미를 갖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실제 올해(8월 누적 기준) 와인 매출은 고공 행진 중이다. 편의점 CU와 GS25의 와인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113.4%, 146.5% 뛰었다. 이마트24는 올해 8월까지 와인 176만병을 판매, 지난해 연간 판매량(173만병)을 이미 넘어섰다. 대형마트인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46.9% 증가했다.

지난 7일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한 여성이 와인을 고르고 있다. 롯데마트는 최근 서울역점의 와인 매장을 2배가량 넓혔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주세법 개정으로 온라인을 통해 와인을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찾아가는 ‘스마트 오더’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도 인기 비결이다. GS25 관계자는 “편의점 매장은 공간 문제로 다양한 와인을 비치하기 어렵지만 와인 예약 서비스인 ‘와인25 플러스’를 통해 온라인에서 와인, 양주, 지역 전통주 등 3500여 주류를 비교하며 고를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혼술이 전문화되고 있다는 것도 와인 열풍의 이유”라고 꼽았다. 변용진 와인21닷컴 이사는 “저가 와인을 맛본 사람이 조금씩 다른 와인을 구매하며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게 된다”며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라 취향을 위해 마시는 술 문화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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