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이 물었다, 개미 투자자는 왜 '개미지옥'에 빠져드나

양지호 기자 2021. 9. 1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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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김수현 지음|민음사|352쪽|1만6000원

코로나 이후 새롭게 등장한 종교가 있다. 저자는 이를 ‘우상향교(敎)’라고 부른다. 우상향교는 주식시장은 역사적으로 보면 줄곧 성장(우상향)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종교에 가까운 믿음을 뜻한다. 여윳돈을 우량주에 투자해서 ‘존버’(오를 때까지 버티기)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저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청년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팔아 이들을 주식시장으로 유혹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온라인을 달군 동명의 인류학 석사 학위 논문을 쓴 김수현(27)씨가 4050 주식 매매방 투자자의 ‘필패담’에 2030 청년 투자자에 대한 분석을 더해 책으로 펴냈다. 2019년 4개월 동안 주식 매매방으로 출퇴근하며 4050 전업 투자자를 연구해 ‘개인 투자가 실패하는 3단계’를 도출해 화제였는데, 코로나 이후 젊은 투자자들을 심층 면접해 ‘우상향교’에 포섭된 이들이 왜 실패할 가능성이 큰지에 대한 설명도 추가했다. 주식시장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각종 ‘투자 성공담’이 범람하는 시대에 필요할 균형감각을 선사한다.

2030세대는 그래서 ‘존버’를 격언으로 삼는다. “’기다리는 자에겐 복이 있다’는 우상향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1교리 ‘존버’를 실천하며 인내해야 한다. 매도하기 전에는 결코 돈을 잃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출산·육아·부동산 등 목돈 들어갈 일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존버’는 사실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인 대한민국 청년에겐 오랫동안 쓰지 않고 (주식에) 묵혀 둘 여유 자금이 없다”고 그는 썼다.

예외적으로 여윳돈이 있어 투자하더라도 하락장이 몇 년 동안 이어진다면 우상향을 믿고 버티기란 쉽지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단순명료한 방법론이지만, 동요도 후회도 없이 ‘기다리면 다시 오르겠지’라고 태평할 수 있는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빚투’(빚 내서 투자)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여유 자금으로만 투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방증이다. 저자는 “주식시장에서 투자자가 강조하는 원칙이란, 인간이기에 어기게 되는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라고 한다.

이미 논문에서 다뤘던 4050세대의 주식 투자 실패는 ‘손절매’라는 이들 세대의 대원칙을 지키지 못해서였다. 저자가 말하는 ‘실패하는 3단계’는 다음과 같다. 1단계 ‘약간의 자본금으로 작은 성공을 거둔다’. 2단계 ‘돈 벌기 쉽다고 믿으며 판돈을 올린다. 나는 잘될 거라고 근거 없이 믿는다. 3단계 투자 종목에서 손실이 생기면 팔아야 하는데, 해당 주식을 추가 매수(물타기)한다.

말로는 ‘손절매’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지키기 어렵다. 저자는 이를 행동경제학의 ‘처분 효과’와 ‘보유 효과’로 설명한다. 처분 효과는 사람은 이익 실현을 손실 처분보다 선호한다는 것이다. 5% 오른 주식은 쉽게 판다. 그러나 10% 떨어진 주식은 팔기 어렵다. 저자는 “손실을 내고 있는 종목보다 이익을 안겨주는 종목을 더 빨리 실현한다”며 “치킨집을 운영한다면 적자 매장은 문을 닫고 흑자 매장은 그대로 둘 텐데 그 반대로 행동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보유 효과’가 가세한다. 소유물에 애착이 생겨서 값어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현상이다. 내가 산 주식은 ‘시장가보다 값어치가 높다’는 자기 세뇌가 시작된다. 탈출은 더 힘들어진다. 잔액이 줄어들면 ‘한 방에 역전’을 노리다가 실수한다. 10번 중 7번은 투자에 성공해도 나머지 3번에서 큰 실패를 하면 손해를 보는 곳, 개미 투자자에게 그곳은 개미 지옥이다.

저자가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찾았던 서울 시내 ‘로알매매방’은 2007년 문을 열었다. 저자는 “매매방을 거쳐 간 200여 명 가운데 현재까지 남은 사람은 2명에 불과하며, 고수익을 올리고 떠난 ‘수퍼 개미’는 5%가 채 안 된다”고 한다.

지난해 주식 투자에 나선 한국인은 919만명에 달한다. ‘월급만으로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고, 언제까지 월급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니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심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미래를 보장해줄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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