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방임은 가라.. 시대는 '품격있는 어른'을 원한다

곽아람 기자 2021. 9. 1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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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귀족 출신 저자, 기사도 바탕 진정한 어른의 格 27가지 제시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가 쓴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추수밭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을 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이상희 옮김|추수밭|456쪽|1만8000원

‘선 굵은 남자 어른’을 원하는 시대가 온 걸까. 젊은이들에게 보수적인 옛 질서를 대안으로 제안하는 콘텐츠가 ‘20대 남성의 멘토’로 불리는 조던 피터슨 토론토대 교수를 필두로 출판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자유방임주의가 현 시대를 망쳤다는 개탄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기사도(騎士道)다.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을 쓴 몰락한 독일 귀족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52) 백작은 조던 피터슨의 계보를 잇고 있지만, 더 우아하고 섬세하다. 그는 “자율성을 삶의 유일한 의미이자 목적으로 여기는 현대 엘리트들에게 대항해 새로운 형태의 고귀함을 내세우는 것은 어떨까?”라며 기사도에서 답을 찾자고 말한다. 기사도가 ‘세련된 초연함’이라는 쿨함과 ‘따뜻한 인정’이라는 상냥함을 아우르는 중용의 정신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아서 왕 전설’ 등을 통해 되짚은 기사도의 덕목 27가지를 ‘진정한 어른의 품격’으로 제시한다. 쇤부르크는 2005년 낸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 독일에서만 30만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이번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미덕은 ‘절제’. 그는 “오래된 귀족 가문의 후손인 나와 평범한 집안 출신이 다른 점을 굳이 꼽자면 내 선조들이 좀 더 일찍 스스로를 억제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절제한다는 것은 ‘자발적인 단념’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달리 행동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귀족들은 누가 더 절제를 잘하는지 올림픽 경기라도 하듯 경쟁한다”면서 구체적인 예를 든다. “우리 친척들 대부분은 풍족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가족 파티에 참석할 때 나는 우아하지만 최대한 닳아빠진 양복을 찾아 입는다. ‘저 옷 새거야?’라고 묻는 것은 우리 집안에서 꽤 못마땅하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인도·러시아 등지에서 신흥 부호들이 몰려들면서 유럽 귀족들 사이에 이 같은 추세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혹여 러시아 신흥 재벌의 부인으로 비칠까 봐 외양간에서 막 나온 사람처럼 하고 다닌다.”

서로를 존중하고 지지하며 함께 걷고 있는 노인과 젊은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누군가를 훈계하는 일은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최선의 방법은 그저 솔선수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절제’라는 미덕은 ‘겸손’으로도 이어진다. 겸손과 오만은 한끗 차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종손녀(從孫女) 뻘인 그의 아내는 여왕에게 인사할 때 먼저 무릎을 구부려 정중히 절을 하고 이어 몸을 일으켜 여왕의 양 볼에 입 맞춘다. 전자는 여왕에게 드리는 예이고 후자는 종조모에 대한 인사다. “만일 무릎을 꿇고 하는 인사를 여왕이 사양한다면, 이는 겸손이 아니라 오만이 된다. 공직에 개인의 인격을 덮어씌움으로써 공직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급호텔에 묵으면서 짐을 방까지 직접 들고 가는 것도 ‘겸손’이 아니라 짐을 나르고 팁을 받을 권리가 있는 호텔 직원에 대한 ‘모욕’이라 덧붙인다.

‘권위’도 그가 강조하는 미덕 중 하나다. “세상에는 엄연히 서열이 존재한다. 그 높이에 따라 부여받은 권리와 요구받은 의무도 각기 다르다. 이 말이 불편한 사람은 환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모든 팀에는 주장(主將)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부모 자식 관계에서의 권위를 강조한다. “부모와 자식은 결코 동등한 권리 위에 설 수 없는데, 실질적인 권력의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리더의 지위를 가진 자는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타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면 안 된다.”

진정한 기사도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밖에 용기⋅친절⋅인내⋅정의 등 여러 덕목을 갖춰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지나친 격식이 따분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즉흥적인 것, 사소한 흠, 불완전함의 매력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잘 닦여 있지만 수선한 흔적이 있는 신발, 제법 어울리지만 낡은 티가 나는 양복, 물려받은 도자기의 가치를 높여주는 긁힌 자국처럼 진정한 매너는 ‘우아하고 무심한 태도’에서 나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열정의 노예가 되어 주군의 아내 이졸데를 탐한 기사 트리스탄을 예로 들며 배우자에 대한 신실함을 강조하고, “섹스에 품위와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새로운 성(性) 혁명이 필요하다”면서 금욕을 예찬하는 중세 기사의 사랑 ‘민네(Minne)’를 치켜세운다. 지루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술술 읽히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원제는 ‘Die Kunst des lässigen Anstands(무심한 품위의 기술)’. 한국어 제목과 꽤 거리가 멀지만 “원고를 사내에서 돌려보았더니 ‘꼰대 같지 않은 꼰대’가 ‘어른다운 어른의 잔소리’를 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아 그렇게 정했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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