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두 여자는 왜 토마토를 기름에 지져 먹었을까

이용재 음식평론가 2021. 9. 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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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필름위의 만찬]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사람 마음이 참 변덕스러워서, 지긋지긋했던 여름이 막상 뒷걸음질치니 아쉬워지려 한다. 아끼는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1991년)를 볼 때다.

‘토마토’에서는 두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교차한다. 삶의 의미를 잃은 40대 여성 에벌린(캐시 베이츠)은 남편과 요양소의 시숙모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80대 노인 니니(제시카 탠디)와 말을 섞게 된다. 요양원 생활이 외로운 니니는 자신의 시누이라는 잇지(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40년 전, 즉 영화의 배경을 감안했을 때 1950년대 초 앨라배마주에 휘슬 스톱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잇지는 오빠인 버디와 그가 사랑하는 여인 루스(메리 루이즈 파커)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오빠가 기차 사고로 죽자 세상을 등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루스는 조지아주로 시집을 가서는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 폭력 사실을 알게 된 잇지는 루스를 휘슬 스톱으로 데려오고, 두 사람은 부모님의 도움으로 카페를 차려 루스의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산다. 이 카페의 대표 메뉴가 바비큐와 더불어 영화의 제목인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fried green tomato)다.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장면./유니버설 스튜디오

옛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며 니니와 에벌린의 우정도 돈독해지는 가운데 휘슬 스톱의 이야기는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KKK(백인 우월주의 결사단)의 일원인 루스의 남편이 아이를 데려가려 찾아온 것. 잇지도 루스도 집을 비워 아이가 납치될 절체절명의 상황, 루스의 남편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가격당한 뒤 행방불명이 된다. 형사가 5년 동안 수사하지만 아무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토마토를 튀겨 먹는다고? 너무나도 익숙한 식재료인지라 더더욱 생경할 수 있다. 하지만 토마토가 채소라는 점을 떠올리면 의외로 빨리 고개가 끄덕여진다. 게다가 치킨처럼 기름에 푹 담가 튀기는 튀김도 아니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자작하게 달궈 지져낸다는 점까지 알면 맛이 궁금해진다.

레시피도 간단하다. 토마토 4개를 기준으로 달걀 4개(풀어준다), 밀가루 100g, 빵가루 120g을 준비한다. 토마토를 0.5~0.7㎝ 두께로 썰어 소금과 후추로 밑간한 뒤 밀가루와 달걀물, 빵가루를 차례로 묻힌다. 기름을 자작하게 둘러 중불에 달군 프라이팬에 겉면이 노릇해질 때까지, 토마토를 한 면당 2~3분씩 지진다.

바삭한 빵가루 껍질과 살짝 익어 부드러워진 토마토의 질감 대조가 매력 포인트인데, 풀 내음 그득한 염소젖 치즈를 곁들이면 토마토의 흙냄새가 어우러져 맛이 한층 더 깊어진다. 소비뇽블랑 같은 화이트와인이나 로제 와인을 반주 삼으면 지금 아주 잠깐 존재하는, 맑고도 뜨거운 초가을 날씨를 위한 음식으로 더 좋은 게 없다.

삶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 준 자신을 집으로 데려가 함께 살려는 에벌린에게 니니는 루스의 남편에 대한 비밀을 말해준다. 그날 밤 프랭크의 머리를 후려친 이는 바로 흑인 가정부 십시였다고. 드러내놓고 차별이 성행했던 1950년대 미국 남부라면 설사 정당방위였더라도 십시는 사형감이었다. 고민 끝에 잇지는 프랭크를 바비큐로 만들어 시체를 처리하고, 그날따라 바비큐가 무척 맛있다는 칭찬을 듣는다.

사건 발생 5년이 지난 뒤 프랭크의 자동차가 강에서 발견되지만, 시체가 없으니 아무도 살인 혐의를 쓰지 않고 사건은 기소 불가 처리가 되어 버린다. 식인으로 증거를 인멸하다니! 가벼운 터치의 코미디치고는 정말 끔찍하고 충격적인 결말이지만 다들 하하 호호 행복하게 웃어 넘기고 있으니 보는 사람도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묻어가게 된다. 사람이 밉더라도 살인 더 나아가 식인은 절대절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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