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다산왕 기린 “사람 나이로 100살입니다”

용인/김경은 기자 2021. 9. 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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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장순이, 생일 축하합니다.”

지난 8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뜻깊은 생일잔치가 열렸다. 주인공은 1986년 9월 8일 태어나 이날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암컷 기린 ‘장순이’였다. 기린의 평균 수명은 25년인데, 장순이는 서른다섯 해를 살았으니 사람으로 치면 100세가량인 셈이다. 사육사들은 잘 말린 건초더미와 먹기 좋게 손질한 양배추, 고구마, 사과, 장순이가 특히 좋아하는 아카시아 잎, 버드나무 잎으로 케이크를 만들어줬다. 장순이의 소싯적 사진도 걸어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장순이가 요요히 다가와 생일상에 혀를 댔다. 장순이에게서 눈 떼지 못하던 사육사 김종갑(53)씨가 환하게 웃었다.

1987년‘아빠와 딸’로 연을 맺어 35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는 김종갑 사육사와 기린 장순이. /김연정 객원기자

장순이는 1990년부터 17차례에 걸쳐 새끼 18마리를 낳아 국제 종(種) 정보시스템(ISIS)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새끼를 출산한 기린으로 이름 올린 ‘다산의 여왕’이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김씨는 입사 때부터 장순이와 남편 ‘장다리’를 돌봐온 ‘기린 아빠’다. 장다리는 6년 전 세상을 떠났다. “어릴 때 소, 닭, 염소 등 온갖 동물을 길렀지만 야생동물 사육은 상상도 못했죠.” 중2 때 당시 자연농원이던 에버랜드로 수학여행을 왔다. “코끼리와 기린을 보고 큰 동물에 사로잡혔어요.” 김천농업고를 졸업하자마자 에버랜드 동물원에 지원했다. 대개 사육사들은 호랑이 같은 맹수를 기르고 싶어하지만 그는 “덩치 크고 온순한 초식동물이 좋더라”고 했다.

1987년 7월 11일은 그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처음 출근한 자리에서 기린 두 마리를 만났다. 그보다 엿새 먼저 들어와 있던 장순이와 장다리였다. “입사 동기라고 생각하니 더 정이 갔죠.” 당시만 해도 야생동물 사육 정보가 많지 않았다. 집에서 가축을 키우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는 공부에 매진해 전문지식을 쌓는 한편, 동물들이 편히 지낼 수 있게 보살피는 데 주력했다. 먹이를 메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 부어주며 기린들 눈을 자주 들여다봤다. “사람도 계속 보다 보면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잖아요? 동물에게도 표정이 있어요. 좋을 땐 눈빛이 똘망똘망한데 아프면 자꾸 깜박이고 눈물 흘려요.” 단순히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론 사육사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먹는 것 잘 챙겨주고, 청소도 해주고, 끝없이 뒷바라지해야 해요. 사육사가 부지런할수록 동물들은 건강해져요.” 그는 “후임들에게 ‘사계절을 다 겪어보라’고 얘기하는 까닭도 겨우 몇 달 함께한 걸로 그 동물에 대해 잘 안다고 여기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루 30㎏씩 먹이를 수시로 주고, 똥 200개를 매일 세어가며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잠도 같이 자며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했다. 장순이가 그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연 건 “첫 출산했을 때”라고 했다. 새끼 기린은 날 때 키가 180㎝, 몸무게는 70㎏에 달한다. 두세 시간 뒤면 일어나 본능으로 엄마 젖을 찾는다. 그는 장순이가 출산하는 모든 순간을 곁에서 지켰다. “1997년 쌍둥이를 낳았을 때와 2013년 마지막 출산했을 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마지막 출산일이 장순이 생일인 9월 8일이었어요.”

야생동물은 대개 수명이 길지 않고, 다른 동물원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잦다. 그는 “국내 어떤 사육사도 이렇게 오래 같은 동물을 본 경우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장순이를 만난 게 내겐 엄청난 행운이고 행복”이라고 했다. “장순이 생일상이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예감에 마음이 아파요.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어요. 장순아! 고생했다, 고마웠다. 널 돌보며 나 스스로 행복했던 때가 훨씬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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