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진핑에 전화 “경쟁이 충돌 돼선 안돼”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2021. 9. 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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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만에… 이례적 90분간 통화

미·중이 수교 이후 최악 관계를 이어 가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전화 회담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인사차 통화한 지난 2월 이후 7개월 만이다. 두 정상은 이례적으로 90분간에 걸쳐 통화했다. 미국 측은 “통화의 분위기가 친숙하고 솔직했다”고 전했다. 외교가에서 “솔직하다”는 표현은 통상 양측의 의견 차이가 있었음을 인정할 때 사용된다. 이날 통화에서 합의 사항은 도출되지 않았다.

미·중이 수교 이후 최악 관계를 이어 가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전화 회담을 했다./AFP 연합뉴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10일 “시진핑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에 응해 전화 통화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측이 미국과의 실질적 대화 의지를 보이지 않는 데 “격분해(exasperated)” 정상 간 통화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정치적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미·중 관계 관리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미 백악관은 “두 정상은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양국의 책임을 논의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신화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원칙)을 변경할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겠다고 밝혀 왔으나 이 원칙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시 주석에게 언급한 것은 중국을 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월 첫 전화 회담 당시엔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 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홍콩, 신장위구르와 관련한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며 시 주석과 날카롭게 대립했다. 시 주석도 미국을 비판하며 강하게 맞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정상이 최대한 자제하며 충돌 가능성을 막으려 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시 주석은 “(미·중이) 전략적인 담력과 식견, 정치적 패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트럼프 시대의 반중(反中) 정책과 절연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양국 관리 간의 대화가 생산적이지 못하자 양국 지도자가 나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에반 메데이로스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FT에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이번 통화는 “대면 회담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는 중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시진핑 그래픽

다만 미·중 관계가 정상화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내년 3연임을 앞둔 시 주석의 입장에선 미국 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미 유화책을 꺼냈다가는 ‘저자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월 이후 해외 방문을 중단한 상태다. 이날 중국 관영 CCTV방송은 시 주석이 전날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한 소식을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뉴스보다 더 비중 있게 보도했다.

1월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미·중 관계는 평행선을 달려왔다. 자유민주주의와 동맹 외교를 앞세운 바이든 미 행정부는 대만, 남중국해, 신장·홍콩 인권 문제 등을 놓고 중국을 비판해왔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대의 대중 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날 전화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중국의 사이버 활동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의 지도자들이 서로 간의 차이를 제쳐놓고 기후변화에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미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미국은 지난 3월 공개된 마이크로소프트 해킹 배후에 중국 국가안전부가 있다고 주장해 왔고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영국, 일본 등과 함께 지난 7월 중국 국가안전부의 악의적 사이버 활동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정상 간 통화 전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폭넓게 (미·중) 관계를 논의하는 선상에서 북한과 이란이 논의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을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양 정상 간 통화의 목적이 “돌파구가 될 만한 합의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소통의 통로를 열어놓기 위해” 통화했고 “미국의 목적은 미·중 간에 안정적 정세를 이루는 것”이라는 얘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역시 이번 통화가 갈등 확대를 예방하고 분야별 소통 채널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시 주석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송나라 시인 육유(陸游)의 시를 인용하기도 했다. “겹겹의 산과 많은 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앞에 길이 없는가 했는데, 갑자기 버드나무가 무성하고 꽃이 만발한 것이 보이니 앞에 마을이 하나 있구나”라는 시구로, 어려운 상황에서 해결책을 이뤄낸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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