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 가득 소환되는 '인생 음식'의 추억
미각의 번역
도리스 되리 지음 | 함미라 옮김 | 샘터 | 308쪽 | 1만6500원
어릴 적 소풍 전날이면 김밥을 싸시는 어머니 옆에 앉아 계란 지단 따위가 삐죽 솟아나온 김밥 끄트머리를 쏙쏙 집어먹곤 했다. 독일에선 긴 식빵 양쪽의 딱딱한 끄트머리 빵을 ‘크누스트’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갓 구운 보리식빵의 끄트머리는 크누스트 중에서도 최고였다. 진정한 ‘갉아 먹기’의 황홀경으로 나를 이끌었다.”
저자는 ‘파니 핑크’(1994)를 찍은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빵 반죽을 부풀게 하는 효모처럼, 맛깔난 글솜씨로 음식에 얽힌 추억의 감각을 부드럽게 소환한다.
자판기에서 뽑은 따뜻한 녹차와 편의점에서 산 매실장아찌 오니기리를 먹으며 “이보다 더 일본적인 것이 있을까” 생각하고, 해변에서 일광욕으로 뜨끈해진 채 차가운 수박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수박물이 무릎 위에 방울져 떨어지던 기억을 “세상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한다. 일본의 사찰에서 촬영할 때 저녁 다다미방에서 먹던 아몬드 초콜릿은 “삶의 좌절과 고통을 예방하는 처방전”이었고, 일요일 아침이면 폴란드계 유대인이 뉴욕에 연 가게 ‘루스와 딸들’의 연어 크림치즈 베이글을 갈구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뉴요커가 된 것”이라고 말한다.
파에야, 포리지, 자두 케이크, 칼라마레 오징어, 스크램블드 에그…. 입 안 가득 향과 식감이 함께 재생되는 먹거리들이 장소나 사람 이야기와 연결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코로나로 비행기도 못 타는 시대, 책 속 음식들에 각자 갖고 있는 바다 건너 낯선 나라에서의 추억이 겹쳐지며 떠오를 것이다. 차가워진 뱃속 어디서부턴가 그 때 그 순간의 포만감이 모락모락 따끈따끈 올라오는 듯하다. 맛있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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